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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니쉬 Apr 12. 2021

육아의 세계

아기를 기다리는 예비 부모님을 위한 안내서

임신 전,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로부터, 육아는 정말 힘들다고, 부모 둘이서 하기엔 정말 힘들어 공동체로 같이 해야한다는 얘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그때는 그 말이 귀에만 닿고, 마음에까지 오지는 않았다. 그러다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래도 나름 육아 관련 책을 읽으며 지식적인 준비도 하고, 아이를 키우던 친구들의 위협(?) 덕분에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육아의 세계를 마주해보니, 이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커다란 세계였다...!  그래서 오늘은 출산 전의 나처럼 육아의 세계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해, 그 힘듦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겪은 낯섦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시간적 자유가 무너진다


육아를 시작하고서 가장 큰 변화는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육아 관련 컨텐츠를 보면 '먹놀잠'의 패턴을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최대한 잘 잔 직후 에너지가 많은 상태에서) 먹고, 배부른 상태로 기분 좋게 양육자와 놀고, 그 다음 잠을 자는 패턴이다. 그리고 이 패턴은 초반엔 3시간 단위로, 좀 이후엔 4시간 단위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게 자리잡히면 그나마 아기의 생활이 예측이 되어, 부족하지만 내 시간도 만들어, 그 시간에 쉬기도 하고 하고싶은 걸 할 수 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난 후 약 2개월, 특히 '신생아'라 불리는 1개월 동안엔, 패턴 따지지 말고 아기가 배고파하면 먹여야 한다. 즉, 아기가 자더라도 얼만큼 잘 지 예상이 안 되기 때문에, 나와 아기의 생존과 관련된 일을 제외하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집안일만 하게 된다. (아래 리스트의 1번과 2번) // 외부적 or 절대적 시간적 자유의 무너짐


1. 나와 아기의 생존과 관련된 일: 식사, 젖병 설거지, 빠르게 씻기, 낮잠 자기 등

2.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집안일: 설거지, 빨래 개기, 집안 정돈, 청소 등

3. 내가 하고 싶지만 오래 걸리는 일: 샤워 (원하는만큼) 오래 하기, 말씀 묵상, 공부, 독서, 글 쓰기 등

4. 시간 떼우는 일: 디지털 컨텐츠 보기


그리고 드물지만 1번과 2번이 마무리되었는데 아기가 계속 자는 경우, 3번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갑작스런 인터럽트로 인한(==아기의 깸) 컨텍스트 스위칭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 4번을 보통 하였다. 근데 4번을 별 계획 없이 하다보니, 디지털 컨텐츠 중독이 되었고, 이후 아기가 패턴이 생기며 예측할 수 있는 내 시간이 생기는데도 그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사용하지 못하고 디지털 컨텐츠만 보는 현상이 나타났다. // 내부적 시간적 자유의 무너짐 or 자제력의 무너짐

 

남편을 보면, 3번의 우선순위를 무척 높여서 시간이 나면 1번을 끝내고 바로 3번을 하곤 했다 (때로는 1번을 완전히 끝내지 않고 살아갈 정도만 끝내놓고). 잦은 컨텍스트 스위칭으로 인해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부족한 시간 중에 계속 하다보니, 점점 시간의 한계 안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배치해가는 지혜가 쌓여가는 듯 했다.


나도 이제는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육아 이전과 동일한 방식과 집중력으로 하려던 욕심을 내려놓고, 4번으로 채우던 내 시간을 3번으로 채우려고 노력할 예정이다. 육아의 세계로 들어오는 분은, 먼저 절대적으로 자신만의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인지하고, 부족한 시간에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최대한 시도했으면 좋겠다.



체력이 많이 필요하다


나는 임신 전에 각종 유산소운동 및 근력운동으로 꽤 기초 체력을 잘 다져놓았던 사람이다 (임신 전에 했던 운동들: 수영 1년, 발레 2년, 탁구 n개월, 홈트 종종). 심지어 임신 중에도, 순산 및 빠른 산후 회복을 위해, 걷기는 물론 배에 무리가 가지 않는 근력 운동(와이드 스쿼트, 브릿지, 발레 동작 등)도 열심히 했다. 나는 내 또래 30대 여성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상위권의 체력을 갖고있다고 자신감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니 이 정도론 부족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자신있게 유지해 온 나의 체력은 나 하나 건강하게 살 정도의 체력이었는데, 이제는 나와 아이, 둘 다를 내 체력으로 커버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100일이 지난 우리 아기의 체중은 6.4kg이다. 출산 후부터 매일 증량되는 아령을 몇시간씩 - 그것도 내가 하기 쉬운 자세가 아닌 아주 조심스러운 자세로 - 든다고 상상해보라!


체력을 유지 or 증진하기 위해, 출산 전만큼 혹은 그보다 더 운동을 해야할 텐데, 출산 직후엔 그마저도 몸이 안 되어 못하고, 어느 정도 산후조리가 되었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시간적 제약 때문에 마음껏 운동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출산 직후엔 수시로 아기가 깨기 때문에 밤에 3시간 이상 자기가 힘들고, 아기가 100일이 지난 지금도 새벽에 한번은 깨어 수유를 하니, 잠을 제대로 못자 더욱 큰 폭으로 체력은 소모된다. 즉, 육아하면서 체력을 증진시키는 건 육아 도우미가 있지 않는 이상 정말 정말 어렵고, 육아는 출산 전에 쌓아둔 체력을 최대한 느리게 소모하면서 해야하는 것이다. (체력 소모의 속도를 늦추는 건 이 부족한 시간 중에도 짬을 내어 운동하는 양에 따라 달려있겠지.)

- 참고로 나는 산후조리원(2주)을 나온 이후, 산후 도우미를 고용하지 않고, 친정과 시댁의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서만 육아를 했다. 남편이 출근 전과 퇴근 후, 집에 있는 동안엔 교대로 함께 육아를 했기 때문에 힘들지만 가능은 하다고 말해둔다. 


따라서, 나는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임신 전에 힘들겠지만 최상위권의 체력을 준비해두라고 말하고 싶고 (30대라면 건강한 20대 초반 여성의 수준으로!! 할 수 있는만큼!!), 임신 중에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고 그 체력을 최대한 잘 유지해두라고 말하고 싶다.



모유수유는 엄마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출산 전에는 모유 수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나도 분유를 먹고 자랐고 내 동생도 분유를 먹고 자랐고, 내 주변에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 대부분 분유 수유를 하길래 나도 당연히 아기에게 분유 수유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모유를 어떻게 먹이는 지 고민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출산 직전에 비대면 산모 교실에서, 모유가 아기 건강에 얼마나 좋은 지 들으면서, 또 드물게 있는 완모(완전 모유수유, 액체식만 먹는 6개월 동안 분유 보충 없이 모유만 먹이는 것)한 친구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나도 완모를 해볼까하는 꿈을 느지막히 꾸게 되었다. 출산예정일을 이틀을 앞두고 부랴부랴 산모 교실에서 추천 받은 모유 수유에 대한 책을 샀다. 책을 통해 모유가 분유에 비해 어떤 점이 좋은지, 그리고 다양한 모유 수유 자세와 여러가지 주의점을 숙지하였다.


그런데, 이게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ㅠㅠ 왜냐하면, 첫번째로 내가 내 의지대로 심박수를 딱 조절할 수 없는 것처럼, 모유도 내가 원하는만큼 나오도록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운동을 해서 심박수를 좀 더 빠르게 할 수는 있듯이, 자주 유축해줌으로써 뇌에 모유가 부족하다는 사인을 전달해 모유가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두번째로는, 아기를 내가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유는 아기가 엄마 가슴에서 자주 먹을수록 양이 많아지는데, 우리 아기는 산후조리원에서 조금만 힘을 줘도 나오는 젖병에 익숙해져서인지, 엄마 가슴보다 젖병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유 양이 아기와 맞춰지는 산후 첫 몇 주 동안, 아기가 수유 쿠션 위에 눕기만해도 아주 거세게 울며 모유를 거부했던 적이 있었다. 나라도 배고파 죽을 거 같은데 넉넉히 나오지도 않는 젖을 먹으라고 하면 아주 화가 날 것이다. 이렇게 아기가 엄마의 모유를 거부하니 나의 모유양은 더욱 줄게 되었다.


내 마음은 아기에게 최대한 모유만 주고 싶은데, 내 몸에서는 아기가 원하는만큼의 모유는 나오지 않고, 아기는 그러니 계속 모유를 거부하고... 아기가 40일쯤 되어서는 거의 매번 직수(유축한 모유를 젖병으로 먹는 게 아닌, 엄마 가슴에서 직접 모유를 먹는 것)를 거부해서 직수한 시간이 하루 내내 겨우 10분을 채울까 말까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 때에도 나는, 내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조금이라도 먹어주지 않는 거니' 생각하며 속으로 아기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프랑스 아이처럼> 책을 읽으며 모유보다 조금은 못할지라도 분유 역시 아기에게 결코 부족하지 않은, 건강한 음식임을 인정하게 되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았던 모유 수유 컨설팅 시간에 3개월 후에 복직을 하게 된다면 완모하면 오히려 아기가 갑자기 젖병에 적응해야해서 힘들어할 수 있으므로 혼합수유를 계속 하라는 코칭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모유를 어떻게서든 먹여서 아기가 육체적으로 좀 더 건강해지는 것보다, 엄마가 행복하게 아이와 눈맞춤하며 상호작용하는 게 아이에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완모를 하겠다는 내 욕심 (그래서 사람들 보기에 대단한 엄마로 인정받고자 하는 내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모유를 간식처럼 먹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불편함을 내려놓고, 되는 만큼만 편하게 모유 수유해야지 생각하였다.


모유 수유를 결심하는 예비 엄마들이 있다면, 본인의 모유 양과 아기가 모유를 얼마만큼 먹어줄 지는 본인이 결정할 수 없다는 걸 꼭 얘기해주고 싶다. 그러니 모유 수유를 꿈꾼다면, 이에 대해 미리 공부는 하되, 너무 강박적으로 모유 수유를 하려고 힘 주지 말고, 되는 만큼만 하자, 맘을 편히 가지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아기는 분유를 먹고도 충분히 건강할 것이고, 행복한 엄마와 눈맞춤하는 것을 더욱 바란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엄마가 욕심을 내려놓으니, 신기하게도 우리 아기는 조금씩 엄마 가슴을 거부하지 않게 되었다 (대략 아기 55일쯤부터였던 듯). 아마 시간이 지나며 아기의 빠는 힘과 목 넘기는 능력이 좋아져 부족한 젖도 힘차게 빨 수 있게 되고, 사출이 일어나도 꿀떡꿀떡 잘 넘길 수 있게 되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점점 모유 수유 비율이 높아져, 아기 100일이 넘은 현재까지 하루에 분유는 450ml 정도 먹고, 엄마 모유를 60~70분 정도 먹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복직을 앞두고 이제는 정말 단유를 해야하는데, 오물오물 젖을 먹는 아기의 귀여운 모습을 더이상 보지 못할 게 아쉬워, 모유 수유를 줄이긴 했지만 완전히 끊는 것은 미루고 있다. 복직하고서 일하는 중에 가슴이 단단해지고 아파지면 후회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일을 안하는 이 시기에 최대한 오래 아기가 젖 먹는 그 귀여운 모습을 보며 행복하고 싶다.




아기의 울음(특히 자기 전 울음) 등 육아의 세계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더 있지만, 가장 크게 나의 세계를 흔들었던 것은 이렇게 세가지, 시간적 자유의 제약, 아주 높은 수준의 체력의 필요성, 모유 수유의 어려움이었던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예비 부모들이 나보다는 조금 더 준비된 마음으로 육아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기를, 그래서 조금 더 행복하게 육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짚어 두고 싶은 것은,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은 힘든 점들뿐이라 육아의 세계의 어려움만 정리하였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은 내가 예상은 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갑작스러운 충격들에도 불구하고 아이 낳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얼른 둘째도 (혹은 셋째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꼭 언급하고 싶다!


(이 글은 2021년 4월 5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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