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니쉬 Apr 12. 2021

나와 엄마

<금쪽같은 내새끼>의 선한 영향력

요즘 나의 최애 예능은 <금쪽같은 내새끼>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많은 아이들을 치유(?)해주신 오은영 박사님께서 출연하시는 육아 예능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관찰한 후, 박사님이 솔루션을 제시한 뒤, 아이가 변하는 모습을 확인한다. 사실 출산 전에는 이 프로그램이 네이버 상단에 인기 영상으로 떠도, 클릭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때의 내 삶과 비슷한 <나 혼자 산다>나 <놀면 뭐하니?>같은 프로그램을 보았었지. 그런데 이제는 예능 볼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금쪽같은 내새끼>를 본다. 아무래도 육아 중 생긴 황금같은 나만의 시간에, 마냥 놀기만은 아까운데, 이 프로는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니까 시청할 때 죄책감이 들지 않아서인듯? ㅎㅎ


이 프로에는 시그니처 순서가 있는데, 바로 AI 스피커가 아이에게 질문을 하고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나는 이 순서에서 종종 커다란 감동을 받았는데, 엄마에게 혹은 아빠에게 충격적인 모습으로 화를 표출하고 상처를 주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어른인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크기의 부모님을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의 부모님을 향한 고백을 듣다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ㅠㅠ) 아이들의 맘 속에 그렇게 큰 사랑이 있지만, 그 사랑이 거절되고 거절되다 보면, 아이는 어느샌가 마음 문을 닫아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 마음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아이와 부모 사이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그리고 종종 그 솔루션으로 부모는 자신의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라는 제안이 나온다. 자기 부모에게서 받은 왜곡된, 잘못된 사랑의 방식을 자기 자녀에게 고스란히 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나도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나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린 내 안에도 엄마 아빠를 향한 커다란 사랑이 있었겠지? 그런데 어쩌다가 나는 나의 부모님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걸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홉살 때였을 거다. 나는 보통 학교 끝나고 피아노 학원에   피아노 학원 차를 타고 집에 갔는데,  날은 학원 차량 문제로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했다. 학원은 시내에 있고 우리집은 한참 들어간 시골에 있어서, 내려야  정류장에 거의 다왔을  (사실 여기가 종점임 ㅎㅎ) 창밖의 하늘은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마을 몇몇 집에서는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탔다는 뿌듯함과 함께 엄마의 칭찬을 기대하며, 그리고 어린 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걱정하며  앞에서 나를 마중나와 있을 엄마를 기대하며, 씩씩하게 집으로 걸어갔다. 모퉁이를 돌고 집앞이 보이는데! 아아... 엄마는  앞에 없었다.    안의 실망감이란...!  뒤로 펼쳐진 어둑한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쓸쓸하고 외롭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번은 이런 기대를 한 적도 있다.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거 같다. 엄마에게 종아리를 회초리로 맞았던 날, 나는 언젠가 TV에서 봤듯이, 그날 밤 내가 잠들었을 때 엄마가 나 몰래 내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며 미안함의 눈물을 훔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가족 넷이 자는 단칸방에서 난 잠이 든 척, 엄마의 동태를 살폈지만, 엄마에겐 약을 꺼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깜빡 잠들어 버린 나는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종아리를 확인했는데, 약이 발라져있기는 커녕 전 날 맞아 붉었던 부분이 시퍼런 멍으로 변해있었다. (참고로, 오은영선생님은 체벌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시더라.)


이런 경험들이 쌓여 한번은 엄마에게 직접 물은 적도 있다. 동생은 놀러 나갔었나, 어디에 갔었나 기억이 안나지만, 엄마하고 나하고만  둘이 있던  단칸방에서 나는 엄마의 눈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나를 사랑해요?"

나는 엄마가 이렇게 대답해주며 날 꼭 안아주길 속으로 바랐다.

"다혜야, 뭐 그리 당연한 걸 물어? 엄마는 너를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하지~!"

그런데 엄마는 그 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 눈을 피하며 "사.. ㅅㅏ..랑하ㅈ..."라 말씀하시며 자리를 피하셨다. 뭔가 매우 어색하고 부끄러워 보였고, 어린 나는 엄마의 그 불편해하던 모습을 보며 엄마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 여겼다. 아마 그 때, 나는 엄마를 향한 마음 문을 조금씩 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 나는 엄마에게서 사랑 받을 수가 없구나. 더이상 기대하지 말아야지.'

(아빠를 향한 마음 문은 이미 닫혀있었던 듯. 나에게 말을 거의 걸지 않으셨던 아빠에겐 아예 기대를 가져본 적도 없었으니 ㅠㅠ)


그렇게 마음 문을 닫으며, 아주 혹독한 사춘기를 보낸 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다. 나는 부모님과의 이 거리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매일 매일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물리적 거리, 매일 매일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거리.


그런데 문제는 이제야 엄마가 이 거리를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신다는 거다. 나는 너무나 불편했다.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하고, 용돈을 주고, 먹거리를 싸오는 모습이 엄마의 사랑의 방식이라는 게 이해는 되어도,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어련히 알아서 스스로의 삶을 잘 살아가는 독립된 인간'이라 믿어주는, 그 신뢰를 바랐다. 이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나는 엄마의 행동을 사랑으로, 이해를 넘어 느낄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오랫동안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가 노력하시는 모습이 그닥 내 필요를 채워주지 않고 오히려 원치 않는 거라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사춘기때의 나처럼 하나하나 말대꾸하며 갈등을 만들기엔, 난 기대감이 없었고, 지쳐있었다. 마음문을 닫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아이 백일잔치를 준비하면서, 엄마의 여러가지 요구에 또 내 마음이 지쳐갔다. 이번에도 그저 참고 넘어가자 싶었는데,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을 들은 남편은 내게 엄마에게 솔직히 말해볼 것을 제안했다. 내가 엄마에게 받고 싶은 사랑의 방식을 말이다. 50년 넘게 이렇게 살아온 엄마의 삶의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한 나는,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고백을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끈질긴 설득 끝에 나는 엄마에게 긴 카톡을 보냈다.


엄마~ 이번 백일상 여러모로 신경써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특히 보내주신 돈으로 아기 의자도 사고, 백일상 꾸밀 여러가지 소품들도 사고 유용하게 잘 썼어요~ 또 엄마가 제가 먹고 싶어하는 것 사오시려고 제게 물어보시고 사오시려 하는 것도 참 고마워요. 그런데 엄마 나는 엄마한테 너무나 고맙지만, 사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구나, 정말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분명 엄마가 저를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는 방식이 이렇게 돈으로 또 먹거리로 지원해주시는 방식이라는 걸 이해는 해도... 그게 제가 원하는 사랑받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엄마,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은 “저를 온전히 믿어주는” 방식이에요. 엄마 생각엔 제 사는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걱정들, 아쉬움이 들 수 있지만, 제 목숨에 큰 지장이 없는 거라면 제가 사는 방식을 바꾸려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응원하고 지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집이 좀 더러워도, 모유 수유를 못(안)하더라도, 백일상에 떡이 좀 부족한 거 같고, 아기에게 한복을 입히지 않아도,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간다해도, “우리 딸이 그동안 혼자서도 잘 살아왔는데 어련히 잘하겠지, 엄마 자신보다 지혜로운 하나님의 인도하심 구하며 잘 걸어가는데 가장 좋은 길로 가고 있겠지”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부모로써 여러가지 걱정들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걱정들이 들 때 그걸 제게 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그 걱정이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말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요). 제가 스타트업에 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그래도~”로 시작하는 말들로 저를 걱정해주셨지요. “그래도 대기업이 더 좋지 않을까” 등등이요. 엄마 근데 거기서 끝나면 저는 그 걱정을 엄마의 요구(대기업에 남아라, 그게 엄마가 원하는 거고 그래야 엄마가 행복해진다)로 듣게 되어요. 엄마 정말 날 향한 사랑이 담긴 걱정을 말하고 싶으시다면 걱정들 뒤에 이렇게만 더 말해주세요. “그런데 다혜야, 이건 엄마 생각일 뿐이고, 네가 가장 하고 싶은대로 선택해~ 엄마는 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잘 선택하리라 믿어.” 이걸 꼭 마지막에 말해주셔요.

(중략)

사실, 나는 자라면서 엄마한테 이런 사랑 - 다혜는 스스로도 인생을 잘 살아간다고 믿어주는 것 - 을 받고자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해왔던 거 같아요. 그런데 번번히 그런 노력들이 좌절되었고 (내가 이럼에도 저럼에도 엄마는 제게 작든 크든 엄마의 요구들을 계속 하셨던 걸로 느꼈거든요), 어느새 저는 엄마에게 그런 사랑받는 걸 포기하고, 더이상 엄마와 갈등만 만들지 말고 그냥 이렇게 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엄마가 저를 사랑해주시려고 노력하시는 거 같은데, 그 노력이 제겐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저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은지 더 자세히 말씀드린 거에요.

엄마,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용돈도 주시고 음식도 싸오시지요? 그런데 엄마 정말 그런 거 없이도 나는 괜찮아요~ 나는 엄마가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잘 살고 있다고 믿어주고 응원만 해주셔도, 난 정말 행복할 거 같고 충만히 사랑받고 있다고 여길 거에요~  

(중략)

엄마, 나도 엄마를 너무 사랑해요. 엄마가 행복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요구들을 열심히 들어드리려고 노력했던 거에요. 그런데 엄마, 이제는 정말 힘들어요.. 작든 크든 내 삶의 방식을 바꿔야하는 엄마의 요구들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괴로워요 ㅠㅠ 엄마, 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더라도, 엄마가 딸에게 사랑받고 싶은 방식을 제게 얘기해주시면 저도 노력할게요~ 엄마랑 대화할 때 좀 더 집중해서 대화하는 등 저도 노력해볼게요~!


그날 답변은 안왔지만, 다음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20여분간의 통화, 오랜만에 엄마의 말에 집중하며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이것도, 저것도, 너에게 부담을 지워 미안하다고, 엄마는 네게 부담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사실은 이런 마음이었다고 말해주셨다. 진심이 담긴 사과였다. 자식에게 사과를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시골 아주머니인 엄마가 날 위해 삶의 방식을 바꿔주고 계셨다. 나는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잘도 흘리는 눈물을 괜히 부끄러워 열심히 참다가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앞으로도 네 맘에 서운함이 생기면 꼭 얘기해주라고 하셨다. 그러겠다고 답했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내가, 다시 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비록 다시 열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남은 시간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분명 바로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를 떠올릴 때의 내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편해진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의 아들 서준이를 생각한다. 서준이가 어린 나처럼 먼저 마음의 문을 닫지 않도록, 매일 매일 진심으로 눈을 맞춰주고,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며, 꼭 안아주어야지! 서준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서준이는 언제 행복한 지, 서준이는 엄마가 어떻게 사랑해주길 원하는 지 자주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내가 엄마에게 썼던 저 편지를 떠올리며, 나도 서준이가 어떤 삶을 살든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내가 아이를 낳고서야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나를 키울 때엔 우리집이 너무나 가난해서, 분유도 사먹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갓난 아기였던 나는 모유는 거부하고 자꾸 분유를 먹으려해서 어린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셨었다 한다 (엄마는 나를 20대 초반에 낳으셨다). 일회용 기저귀를 살 돈이 없어 당연히 천기저귀를 썼는데, 초반에는 세탁기도 없어서 그걸 다 손빨래를 하셨다 한다. 그러다 아빠가 세탁기를 사주셨는데 엄마는 어찌나 좋던지 며칠간 세탁기를 바라만봐도 마음이 흐뭇해지셨다고. 나의 백일 잔치날, 아빠 친구들에게 백일 반지와 돈이 많이 들어왔는데, 어떤 선물보다 분유값 기저귀값 할 수 있는 금반지와 현금을 주신 분들이 그렇게 고마웠다고 하셨다.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분유 살 돈이 없고, 일회용 기저귀와 세탁기와 건조기가 없는 육아 생활... 엄마는 나를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키워주셨다. 그리고 그래서 엄마는 내게 자꾸 자꾸 용돈을 주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