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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니쉬 Oct 17. 2021

수습기간 중에 팀 이동을?

(지난 2021년 7월 12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직 수습기간이 한달 정도 남았는데, 팀 이동이라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이제는 이전 팀이 된 그 팀에서 마음이 맞는 동료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 팀 안에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팀 이동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한달 전부터 급 친해진 나와 동료는 종종 팀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나누게 되었다. 그 불편함들은 수평적인 문화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탑다운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던 경험들, 그리고 할당받은 이슈에 대해 내 방식대로 처리하다가도 결국 팀장님의 스타일을 따라야하고, 그래서 내가 예측한 시기에 마무리할 수 없던 경험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나 하나는 소소한 사건들이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지나쳤었는데, 이 작은 사건들을 한데 모아 보니, 이 정도는 내가 행복하게 일하는 데 필요한 자율성이 침해받고 있는 상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이 정도야 뭐'하고 지나쳤던 사건들이 모여, 나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팀장님의 불안감, 급박함, 팀원에 대한 불신 등의 감정에 휩쓸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팀장님의 페이스를 헉헉 거리며 쫓아가던 상태였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상황을 인지하게 되자, 그동안 내가 그래왔듯 팀장님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먼저 회사 내 조직 이동을 알아봤다. 그런데 원하는 조직의 이동은 막혀있었다. 게다가 수습기간 중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고 1년 정도는 일한 뒤에야 회사 내 이동이 가능한 것 같았다. 


'아, 나는 이 상태에서 1년을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또 다시 퇴사의 옵션을 만지작거렸다. 2년을 넘게 한 회사를 다닌 경험이 없어서 이번만큼은 2년을 넘겨 다니며 성실함을 훈련해보자고 입사한 것인데도 말이다. 마침 남편이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성실함을 훈련하려 했지만, 남편의 꿈을 지원하려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해야겠지~" 합리화를 하며 또 한번의 빠른 퇴사에 대한 변명을 만들고 있었다.


앗, 그런데, 남편이 경제적 활동의 기회를 수락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남편의 꿈이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자기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 방향을 응원하기로 하였다. 나는 퇴사의 옵션을 내려놓은 뒤 원점에서 다시 고민을 이어나갔다. 일단 처음에 내가 Machine Learning(ML)을 하려고 입사를 했는데 Data Engineering(DE)을 하는 팀에 배정된 배경에 대해, 1차 면접을 보셨던 옆팀 리더님께 메일로 여쭤보았다. 당장엔 조직 이동이 막혀있으니 어렵더라도, 나중엔 ML쪽으로 커리어를 쌓고 싶기 때문에 ML쪽에 배정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확인하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계획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한편 그 친한 동료분과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나갈지 함께 논의해보았다.


동료분은 팀장님의 러쉬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자신이 이 팀에 들어와 배우고자 했던 것을 자신의 속도대로 배워가는 것을 훈련할 계획이라고 나눠주셨다. 나는 그 의견을 듣고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지키기 힘든 상황이면 그 상황을 벗어날 생각만 했었는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훈련이라니! 그러고보니 그러한 훈련을 하기엔 그 팀이 더없이 좋은(?) 상태의 팀이었다. 또한, 내가 운이 나빠서 이런 팀을 만난 게 아니라 (그래서 이번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나의 환경은 내가 통제할 수 없기에 나의 커리어 상에서 (내가 팀원이든 팀장이 되든) 내 상위 리더가 나(와 우리팀)를 러쉬하는 상황은 충분히 있을 테고, 그 때마다 내가 팀을 버리고 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분의 생각이 참 지혜롭다고 감탄하면서 나도 이 팀에서 이분과 함께 견뎌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결심을 한 다다음날 (지지난주 목요일이었다) 옆 팀 리더분께 답장이 왔다. 본인은 내가 ML이 아닌 DE를 원한다고 알아서 DE 팀으로 보낸 것이라고 하셨다. 뭔가 오해가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DE 경력은 있지도 않고, ML 경력이 적지만 ML을 해보고 싶어 지원했던 것이고, 내 경력이 팀에 들어가기엔 부족해서 DE 팀에 속하게 된 줄 알았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옆 팀 리더님은 지금이라도 팀을 옮길 수 있는데 옮기겠냐고 나의 의사를 여쭤봐주셨다! 나는 어짜피 나의 부족함을 채워 언젠가 ML 쪽을 다시 도전하려고 했었는데 그 기회가 빨리 온 셈이니, 당연히 그러겠다고 답하였다! 그래서 그 날 이 전 팀장님과 친한 동료분께 이 사실을 오픈하였고, 다음날 다른 동료분들께 오픈하였고, 일주일간 이전 팀에서의 업무를 정리한 후, 오늘부터 나는 새로운 팀에 속하게 된 것이다!


수습기간 중에 팀을 옮길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참 내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구나 생각하니, 나의 한계를 깨달으며 겸손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 속하게 된 팀에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나의 동료분의 지혜를 기억하며 나를 지키는 훈련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여튼, 오늘은 앞으로 일어날 부정적인 일들에 대한 걱정보다는,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감사하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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