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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니쉬 Dec 08. 2021

오늘을 사는 잠언 #11

미련함은 불량함이다 (말썽꾼)

2021-12-07에 한 묵상 내용입니다.


잠언 6장 12-15절

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 구부러진 말이 뭘까? 거짓말을 한다는 뜻일까? 왜곡하여 말한다는 뜻일까? 새번역 성경에는 '그릇된 말이나 하며 돌아다닌다'라고 나온다.  NASB에는 'perverse mouth'(비뚤어진), KJV에는 'froward mouth'(외고집의, 고집센, 심술 궂은)라고 적혀있다.


밑줄 친 문장들

또 다른 부류의 미련한 자는 불량한 자 곧 말썽꾼이다. 이 사람의 특징은 끝없는 다툼이다(6:14).

(불량한 자는) 실수나 허물을 덮지 않고(19:11) 늘 따지고 불평하려고만 든다.

불량한 자는 다툼을 일으킬 때 상대편 입장을 공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누락의 속임수, 절반의 진실, 은근한 암시 등 구부러진 말을 일삼는다.  // 말씀에 '구부러진 말'의 뜻이 궁금했는데 이런 공정하지 못한 특성이었구나.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멸망하는 궁극적 이유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6:16, 19).


질문

당신이 개입된 일련의 다툼이 있다면 이는 당신에게 말썽꾼 기질이 있어서인가? 지인 중에 당신이 잘못을 지적해 줘야 할 말썽꾼이 있는가?


오늘 질문의 다툼을 이간질이나 뒷담화로 생각해보면, 요즘 나는 내가 뒷담화하는 경우도 없는 것 같고 이를 듣는 경우도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뒷담화가 많았던 시기가 있는데, 한번은 고등학교 시절이고, 다른 한번은 고등학교 전까지 부모님의 집에서 살던 시기인 것 같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작은 학교여서 우리 학년에 여학생이 총 15명밖에 없고, 전학년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입학하고서 1학년 여학생들끼리 서너개의 무리가 지어지고, 밤마다 몇몇 무리는 한 방에 모여 그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보통 같은 학년 다른 여학생이었던 것 같다)에 대한 뒷담화를 하였었다. 나는 중학교때까지 소위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하는 학생이고 싶어했는데(그게 그때는 내게 참 중요해보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초기에도 그 마음을 갖고 밤마다 이 무리 저 무리에 들어가보았다. 그러면서 뒷담화를 듣기도 하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 한달쯤 지나서 깨달았다. 잘 나가보이는 무리(말을 잘하거나, 얼굴이 잘생겼거나, 패션 감각이 좋은 등 '보여지는 모습'이 튀는 무리)에 속하려 애쓰는 나의 노력이 사실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동안 그런 무리에 속하는 걸 스스로 뿌듯하게 여겼었는데, 이게 사실은 뿌듯할 게 하나 없는 헛된 가치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또래 학생들에게 잘 나간다고 인정받는다 해서, 고등학생으로서 가장 집중해야하는 목표인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 한달간 뒷담화에 참여하면서 내 마음 속은 참 혼란스러웠는데, 뒷담화에 참여하는 게 묘한 소속감을 주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흉을 보며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였다. 교회에서 배운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이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깨달음을 얻은 뒤로는 뒷담화가 이뤄지는 무리들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고, 서로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친구 2명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환경을 바꾸자 자연스레 뒷담화의 문화는 나와 멀어지게 되었다.


또 다른 시기인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기의 뒷담화는, 보통 엄마에게서 듣는 뒷담화였다. 엄마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보통 그 이야기는 그 사람을 칭찬하는 듯한 뉘앙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중학교때까지는 엄마의 그런 이야기가 엄마와 나만 아는 비밀스런 이야기같았고, 그래서 엄마와 나를 친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서 듣는 게 자연스럽고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고등학교 초기 위와 같이 뒷담화 문화와 멀어지게 되면서, 엄마의 다른 사람 얘기도 불편해졌다. 독립을 하고서도 친정에 방문할 때 엄마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듣기 불편하다는 얘기를 했던 거 같다. 이후로 엄마가 내가 있을 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덜 하시는 거 같기도 하다.


여튼 지금은 뒷담화가 많이 없는, 오히려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앞으로 내 주위에 다른 사람을 뒷담화하고 이간질하려는 하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지혜롭게 그것이 옳지 않음을 일깨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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