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고 신뢰하자.
지금 Y양은 아마 사기라도 당한 느낌일 것이다. 빼어난 외모에 간드러진 애교를 겸비하고 남자친구의 보약까지 챙기는 세심함까지 갖춘 Y양에게 이별통보를 하다니! 정말 Y양의 친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남자는 잘해주면 질려하기 때문일까? Y양은 사연 곳곳에 "심지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라며 남자친구에게 헌신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지만(아마도 친구들에겐 Y양이 해준 이야기만 했겠지...) 남자인 내가 봤을 때에는 Y양의 품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남자친구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저는 연애를 하면 올인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모든 연락을 딱 끊고 남자친구에게만 집중을 하죠. 세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아는 남자 지인들은 저랑 사귀는 남자들이 부럽다고 할 정도예요. 제가 올인을 하는 편이다 보니 연락에 좀 집착을 하고 의심이 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보약도 챙겨주고 데이트 비용도 많이 부담하고 남자친구가 원하는 것이라면 최대한 수용하는 편이에요.
일단... Y양이 남자친구에게 해주는 것을 보면 살짝 연락처가 궁금해질 정도다. 남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변 남자 지인 정리를 하고 남자친구가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를 했다고 보약을 지어 보내고... 남자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몰래 남자친구 주머니에 자신의 카드를 찔러줄 줄 아는! 햐... 남자들의 로망!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 구속과 집착...
Y양은 "제가 올인하는 편이라 구속과 집착이 좀 심한 편이에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게 정말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 정도인가 싶다. 어딜 가든 보고를 하고 알코올이 낀 자리엔 인증숏을 찍어 보내야 하고 자리에 절대로 여자가 없어야 하며 무슨 이유에서든 여자와 단둘이 만남은 불가능 함은 물론이며 이 와 비슷한 수십 가지의 제약에 군소리 없이 응해야 하며 모든 약속을 한 번의 실수 없이 지켜야 하고 약속을 어길 시 이유불문 불벼락을 달갑게 맞아야 한다는 건... 좀 아닌지 싶은데...
Y양은 이렇게 말할게 분명하다. "제가 구속과 집착이 좀 심한 편이지만 저도 똑같이 남자 지인 안 만나고 행선지 보고하고 술자리 가면 인증해요!" Y양은 나도 똑같이 하니 상대도 똑같이 해달라는 게 뭐가 잘못이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연애를 시작하고 올인을 하는 것은 Y양의 연애 스타일이지 남자친구의 연애스타일은 아니지 않은가?
"나도 이렇게 하니 너도 이렇게 해!"는 어찌 보면 공평해 보이지만 결국엔 "내 스타일에 맞춰!"라는 말 아닌가? Y양은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라며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인 것 같은데... 분명 Y양이 남자친구에게 잘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서로 어느 정도의 인맥관리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남자친구의 의사를 묵살했던 것도 사실이다.
억울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생각해보자. Y양이 노력했다는 일들은 남자친구가 바랬던 일이었나? 아니면 Y양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나? 정말 남자친구를 위했다면 Y양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애 스타일을 남자친구에게 강요할게 아니라 남자친구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렴하여 Y양과 남자친구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연애 스타일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처음 남자친구는 제 구속과 집착을 조금 힘들어 하긴 했지만 제가 다른 부분에서 워낙 잘했기 때문인지 크게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남자친구가 저와 한 약속을 어기면서 다툼이 잦아지자 눈에 띄게 남자친구가 지쳐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술자리 문제로 크게 싸웠는데 남자친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Y양의 눈에는 처음에는 별말하지 않다가 Y양이 잘해주니까 조금씩 변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보였겠지만 내 눈에는 처음부터 간신히 참았던 남자친구의 불만들이 드디어 터진 것으로 보인다.
Y양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다 이해한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따져보자. Y양은 남자친구의 연애 스타일 중 어떤 것을 이해해주었나? Y양아... 지금 Y양은 "자!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안 그러면 헤어질 거야!"라는 식으로 남자친구를 겁박한 거다. 애교와 좋은 모습으로 남자친구를 살살 달래기는 했으나 결국 남자친구가 원하는 의견은 전혀 수용하지 않았던가!?
Y양의 입장에서는 남자친구의 연애방식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어딜 나가는데 어딜 나가는지 말을 안 하고 또 아무리 동호회 뒤풀이라지만 술자리에 이성이 껴있고, 오래된 지인이긴 하나 여자 사람 친구를 단둘이 만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느슨한 연애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장기 연애의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Y양 보다는 남자친구의 연애방식이 더 적합하다. 내 말이 틀렸나 주위를 둘러보라. 3년 이상 장기 연애를 하는 커플을 가만히 살펴봐라. 술자리에서 인증숏을 찍는가?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오로지 상대에게만 몰입하는가? 처음에는 Y양의 연애관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로 가면 갈수록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연애가 더 오래갈 수 있다.
처음 남자친구가 Y양의 연애방식을 따랐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Y양도 남자친구의 연애방식을 조금씩 받아주었다면 어땠을까? 초반에는 상대의 주변정리를 말끔하게 해놓고 이 정도면 내 사람이다 싶은 그 순간부터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줬다면 아마도 남자친구는 아직도 Y양의 곁에서 Y양의 행복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헤어지고 나서 저도 제가 너무했나 싶기도 해요... 하지만 주변에서 바람 피는 남자를 너무 많이 보기도 했고 제 언니도 형부가 바람을 피워서 엄청 힘들어하는 걸 봤기에 더 그러는 것 같아요...
Y양의 입장은 충분히 알겠으나 신뢰란 상대를 구속해서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구속하면 할수록 상대를 의심하게 되고 구속당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생각해봐라. 당신은 당신이 공부하나 안하나 10분에 한 번씩 방문을 열어보는 부모님을 신뢰할 수 있겠나?
진정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상대가 꼭 어떤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상대의 인성을 보고 일단 믿어줘야 한다. 매번 확인하려는 사람과 보지 않고도 믿어주는 사람, Y양이라면 둘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겠는가?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 어쩌면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함께해야 할 연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연애를 너무 손해보지 않고 상처하나 받지 않고 하려고 하지 말자. 상대를 움켜쥐고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눈감아주며 조건 없이 믿어주는 것이 보다 행복한 커플 라이프를 만들어가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