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잘못이 없는데 짜증이 난다면 그건 권태기다.
K양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겠지만 지금 K양이 느끼는 감정은 권태기다. 어느 커플이든 언젠가는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권태기를 느낀다고 나쁜 게 아니다. 이럴 땐 억지로 좋아지려고 노력할 필요도 만남이냐 이별이냐 양자택일을 두고 머리를 쥐어뜯을 필요도 없다. 지금 K양이 해야 할 것은 따뜻한 시선으로 남자 친구를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일본인 남자 친구와 일본에서 산지 2년째, 타지 생활의 외로움과 어려움에 스트레스가 쌓여갔어요. 게다가 남자 친구와 대화가 별로 없다 보니 더 괴로웠어요. 물론 전혀 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야한 얘기 더러운 얘기 말장난 같은 말은 많이 했지만 뭔가 진지한 얘기나 공감 갈만한 얘기는 잘 안 했어요.
권태기를 직감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상대의 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이기적인 지라. 자신이 변하고 권태기를 느낀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권태기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나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이는 책임감이 없다는 뜻이기에 우리는 내가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 탓을 한다.
K양은 남자 친구에게 유일한 불만이 '대화'라고 했는데... 이건 당연한 것 아닐까? K양 아무리 일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것이고, 서로 문화 차이와 개인차이가 있는 것인데... 어떻게 대화가 원활할 수 있을까? 또한 말로는 "대화가 잘 통하고 공감을 많이 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믿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하지만 알고 지낸 지가 5년이고 같이 생활한 지가 2년인데 이제 와서 공감 타령을 한다는 건 좀 앞뒤가 안 맞는다.
한없이 사랑스럽던 연인이 어느 날부터 뭔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면 그건 상대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상대는 나를 만났을 때부터 계속 그랬었는데 그때는 괜찮았다가 관계가 권태스러워지니 이런저런 핑곗거릴 찾게 되고 곧 상대의 사소한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다.
K양의 남자 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여전히 K양을 사랑하기에 진로를 고민하는 K양에게 "내가 다 포기하고 같이 한국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라고 하는 거다. 가만히 생각해봐라. 남자 친구는 몇 달 전 K양이 그렇게 사랑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혹시 권태기는 아닌지... 평소엔 좋던 스킨십도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노골적으로 제가 피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남자 친구는 짜증을 내거나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어요. 정말 저에게 너무 잘해주는 남자 친구인데...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들더라고요...
권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흔히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권태기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심해진다. 권태기는 여드름 하고 비슷한 거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것이고 자꾸 신경 스고 만지면 만질수록 심해지고 잘못 만지면 흉터가 남기도 한다.
권태기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슴이 뛰지도 않는데 억지로 "이렇게 착한 남자인데... 좋아해야지!"할 필요 없다. 그저 가만히 상대방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예전보다 덜 꾸미고 살도 조금 불었을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시시한 이야기만 하는 남자 친구를 평가하지도 말고 좋아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는 거다.
생각 없이 멍... 하니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식하는 순간이 온다. 그게 바로 오랜 시간 함께해온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정'이라는 거다. 일단 그렇게 한번 피식하고 나면 권태기라는 것에 머리를 쥐어뜯었던 나 자신이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할결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다.
이제 곧 유학생활이 끝나고 일본에서 취업을 하든 한국으로 돌아가든 해야 하는데 정말 미치겠어요... 남자 친구가 없다면 일본에 더 이상 있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일본 생활이 너무 힘겨운데 그렇다고 한국에 가자니 남자 친구가 걸리고...
연애와 진로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무조건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 이건 단순히 사랑보다 진로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이런 남자를 다시는 못 만날 것만 같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포기한다면 남자 친구를 만나는 내내 "진로를 선택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시달리게 되고 남자 친구에게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게 된다.
K양의 경우는 더욱이 권태기까지 겪고 있지 않는가? 이 상황에서 견디기 힘든 일본 생활을 더 늘려간다는 것은 K양에게도 남자 친구에게도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일단은 K양의 진로에 집중해라. 일본 생활이 너무 힘들고 일본에서 몇 년씩 살 자신이 없다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게 맞다.
그렇다고 당장 남자 친구에게 이별통보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권태기를 겪는 중에 서로 떨어져 있을 기회가 생겼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남자 친구의 단점이 보이고 헤어져야 할지 계속 사귀어야 할지 고민이겠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면 자연스럽게 K양의 생각이 정리될 수도 있다.
K양아,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문제가 안 풀릴 땐 계속 붙들고 있기보다
살짝 한 발짝 물러나는 것도 때론 훌륭한 답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