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는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H양은 일주일 사귀었다가 헤어진 게 아니라 연애 반품을 당한 거다. 사귄 지 얼마 안돼서 이별을 했다면 그건 딱히 뭘 잘못한 게 아니다. 똑같은 스마트폰을 사도 누구는 양품(고장 없는 좋은 물건)을 뽑는가 하면 누구는 불량품을 뽑기도 한다. 이때 가장 현명한 행동은 왜 불량품을 줬냐고 방방 뛰면서 흥분하기보다. "에이 C 잘못 뽑았네!"하고 툴툴거리며 AS센터 가서 다른 제품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H양아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괜히 의미를 두며 가슴 아파하거나 남자의 비매너를 비난하지 말자. 남자는 그럴 수 있으니 이해하라는 게 아니다. 그럴 시간이 아깝다는 거다.
소개팅 어플을 통해 한 달간 썸을 타다가 일주일 전쯤 사귀기로 했어요. 한 달간 달달하게 썸도 타고 만나면서 좋은 감정을 이어가다가 커플이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어플에서 만난 사람답지 않게 직업도, 성격도, 매너도 좋고 진지했어요. 어플에서 만나서 남자가 저 모양이란 얘기는 듣고 싶지 않네요. ㅠㅠ
H양... 아무래도 내 글을 꽤 읽었나 보다. 내가 또 소개팅 어플 싫어하는 건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 미리 자기방어를 하다니! 그래도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자. 그래! H양 말대로 소개팅 어플에서 만났기 때문에 사귀고 나서 일주일도 안 지나서 남자가 아무 말도 없이 잠수를 타게 된 건 아닐 거다.
앞서 말했지만 연애 반품은 이별이 아니다. 사귀기 전에는 "어? 이 정도면 괜찮겠는데?"하는 마음에 시작을 했는데 막상 사귀고 보니 자기가 생각과는 많이 다름을 느끼고 더 감정이 발전하기 전에 관계를 다시 처음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꼭 소개팅 어플이 아니라도 연애 반품은 발생한다. 하지만 다른 만남에 비해 소개팅 어플의 만남에서 연애 반품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자.
지인의 소개든, 회사 혹은 동호회든 자연스러운 만남에서는 둘 사이에 끼어있는 사람, 혹은 헤어지더라도 자주 봐야 하는 상황 등의 환경 때문에 한 번 더 고려를 하거나 연애 반품을 했다가도 자연스레 다시 이어지는 경우 나온다. 하지만 둘 사이에 끼어있는 사람도 없고 자주 볼 수밖에 없는 소개팅 어플의 만남은 언제든 연락을 뚝! 끊으면 그만이다.
소개팅 만남이 다른 만남에 비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른 만남에 비해 더 많은 사람 중에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고, 침대에 누워서 언제 어디서든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태생적으로 다른 만남에 비해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걸 지적하는 거다.
어떻게 만나든 개인의 취향이다. 다만 어디서 어떻게 만났든 그 만남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부인하지는 말자."어플에서 만난 사람답지 않게 직업도 성격도 매너도 좋고 진했다"라고? 근데 왜 연애 반품을 하며 그것도 헤어지자도 아니고 무책임한 잠수일까?
사귀고 나서 남자 친구와 펜션으로 놀러 갔는데 뭔가 다르더라고요... 사귀기 전까지만 해도 순둥순둥하고 이쁜 말만 하던 친구가 직설적으로 말을 하기도 하고, 발이 크다고 하기도 하고, 연예인 닮았다고 하면서도 좀 나이 든 연예인 이름을 말하고... 불쾌한걸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저도 맞디스를 했는데 남자 친구는 당황했다고 하기도 하고 빈정 상해하는 것 같았어요.
연애를 시작하면 누구나 상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문제는 상대방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들이 대부분 단점들이라는 건데, 대부분의 경우 썸을 탈 때보다는 조금 편하고 까칠하게 변한다. 이런 모습을 "이제 잡았으니 떡밥 안주겠다 뭐 그런 건가?"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날 이제 조금 편하게 느끼는구나"정도로 여겨주도록 하자.
간혹 사귀자마자 조금 달라지는 상대의 태도에 대해 H양과 같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싸움을 연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꼭 그래야만 할까...?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기분 나빴다면 아닌척하고 맞디스를 하기보다 볼이라도 한번 꼬집어주며 "자기야, 여자 친구한테 발 크다고 놀리면 돼요~? 안돼요~?"라며 웃으면서 경고를 줄 수도 있는데... 뭐 선택은 개인의 취향대로 하도록 하자. (선택하기 전엔 반대 입장도 생각해보고 선택하는 것이 포인트!?)
쿨하지 못한 성격은 반드시 트러블을 일으킨다. 똑같은 불쾌함을 느껴도 쿨한 사람은 유머로 자신의 불쾌함을 쿨하게 전달하며 분위기나 관계를 해치지 않지만 예민하고 쿨하지 못한 사람은 별것 아닌 일에도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날 꽁하게 보겠지?"라며 상대방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도 결국은 상대방을 비꼬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며 분위기는 물론이고 상대방과의 관계마저 해치고 만다.
당연히 여행에서 별다른 스킨십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연락이 줄고 분위기도 좀 안 좋아진 것 같아요. 괜히 여행을 갔었던 걸까요...? 저 연애 반품당한 건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연락하지 말고 올 때까지 기다려볼까요? 아니면 먼저 연락을 해서 결판을 내고 끝을 내야 할까요...?
물론 현 상황은 연애 반품의 상황이 맞는 듯하다. 연애 반품은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H양 입장에서는 변해버린 남자 친구가 불쾌하겠지만 H양의 남자 친구라고 의도적으로 연애 반품은 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어플을 통해 가볍게 만났는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도중 분위기에 자연스레 연인이 되어버렸고 여행까지 가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이렇다 할 느낌을 받지 못하고 결국 연애 반품을 택한 게 꼭 H양의 남자 친구의 잘못일까? (남자 친구를 옹호하자는 건 아니지만 남자 친구도 분명 잘해보고 싶었을 거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H양은 연락을 하지 않고 기다리거나 먼저 연락을 해서 결판을 내는 자존심을 지키는 선택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선택도 나쁘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H양아 네가 원하는 게 뭐니?"라고 물어보는 건 어떨까? H양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을 때 H양의 마음이 H양에게 "할 수 있다면 남자 친구랑 잘해보고 싶어..."라고 대답한다면 잠시만 자존심은 접고 H양의 본능에 따라 보자.
비록 연애 반품을 당했지만, 어쨌든 한 남자의 입에서 사귀자는 말을 이끌어 낸 능력자가 아닌가? 자존심을 지키며 남자 친구의 마음을 뛰게 만드는 건 힘들겠지만, 잠시 자존심을 한편에 밀어 놓는다면 한번 꼬신 남자를 또 못 꼬실 건 무엇일까?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당신이 진짜 뭘 원하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서 당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나보다 아마 H양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