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보다 중요한 건 내가 상대를 좋아하느냐이다.
전날 과음을 했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짬뽕집이 있다. 국물이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걸쭉해서 뭔가 건강? 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곳이라 자주 찾는데 그곳은 선불이다. 사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땐 좀 그랬다. 내가 고작 짬뽕하나 먹고 도망갈 사람도 아니고 뭔가 불친절한 느낌도 들고, 매정한 느낌도 좀 들고 하지만 난 여전히 비가 오거나 전날 과음을 했으면 어김없이 그 짬뽕집을 찾아간다. 왜냐고? "맛있으니까!" 이 곳에서 짬뽕을 먹을 때마다 난 이런 생각을 한다. "연애도 참 그런 것 같네, 그 사람이 내 기분을 좀 상하게 하는 게 뭐가 대수야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바로님의 글을 읽기 전에는 연애가 뭔지도 몰랐는데... 바로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제 연애가 뭔지 대충 감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지난 1년여간 애매한 썸을 탄 것 같은데... 이게 썸인지 아님 그냥 제가 착각한 건지 모르겠네요. 그분과는 같은 회사 같은 팀으로 만났어요. 제가 좀 다혈질적인 성격이라 업무에 관해서 많이 화를 내기도 했는데 웃으면서 잘 받아주더라고요.
그렇게 분위기는 좋아진 것 같은데... 제가 용기 내서 밥을 먹자고 하면 알았다고 해놓고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지는 않아요. 회사에서는 그렇게 친한척하면서도 주말엔 연락도 없고... 친구들은 맘은 있는 거 같다는데... 한 번은 장난식으로 스킨십을 하길래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적당한 선은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쏘아붙였어요. 아무래도 이 남자 진심이 아닌 거겠죠?
- 썸남이 진심이 아니라 불쾌한 H양
일단 H양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H양이 말하는 진심이라는 것이 썸남이 H양과 빨리 진지하게 사귀고 싶어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면 H양의 말이 맞다. 썸남은 H양을 진지하게 만나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주말에도 연락이 오는 게 당연하고, H양이 밥을 먹자 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오는 게 당연하다.
썸남에게 마음이 있는 H양 입장에서는 애매한 행동의 썸남이 불쾌한 바람둥이로 비칠 수 있겠지만 사실... 세상이 자신의 입장을 칼같이 나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H양아 당장 핸드폰을 꺼내서 카톡 친구 목록을 살살 올려보자. H양은 카톡 친구 목록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그냥 지인으로 정확하게 두부류로 나누는가?
분명 H양은 수많은 지인을 남자와 여자, 가족과 지인, 친구와 동료로 나누고 그중에 친한 사람과 안 친한 사람, 그리고 H양이 판단하기에 매력적인 사람과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 등의 수많은 기준으로 나눌 것이다. 그러다 보면 H양의 지인 중에서도 애매한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쉽게 말해 "사귀는 건 좀 아니지만 친해지는 건 좋은 사람" 혹은 "내가 먼저 대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 쪽에서 먼저 대시를 하면 뭐 딱히 거절은 안 할 것 같은 사람" 뭐 이런 애매한 사람들 말이다.
H양에게 묻고 싶다. 썸남이 진지한 접근이 아니라면 정말 싫은가? "어? H양 귀엽네?"정도로 다가가서 H양의 반응을 살피고 아직 연인으로써의 책임은 부담스럽지만 조금은 더 알아가 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정도는 H양에게는 실례일까? 그래, 이러한 애매한 태도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중요한 건 H양의 마음이다. H양이 끌린다면 상대의 애매한 태도를 불쾌한 태도가 아닌 하나의 기회로 인식하는 것이 맞다.
H양이 이 세상 모든 남자를 올인할 만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썸남도 그럴 뿐인 거다. 애매한 행동을 미워하지 마라. 애매하다는 건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리면서도 관심은 있다는 거다. 문제는 그걸 H양이 어떻게 끌어오느냐지. 애매한 상대의 태도를 탓해서는 곤란하다.
지난 몇 달간 미 직지 근한 썸이 있었던 썸남에게 연락이 왔어요. 갑자기 술 한잔 하자고... 저는 선약도 있었고, 약속도 없이 대뜸 술 한잔 하자는 태도에 기분도 상해서 다음 주에 마시자고 했죠. 그런데 다음 주가 되니까 썸남이 그냥 나중에 보자고 해서 결국엔 또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 타이밍이 왔음에도 자존심을 내세우며 타이밍을 놓친 S양
앞서 H양의 사연에 이어서 좀 잔인하게 말을 하자면 썸남이 애매하게 행동한다는 건 어쨌든 썸남의 기준에서 썸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뭔가 저돌적으로 대시를 하기엔 썸녀의 매력을 아직 잘 모르겠다. 뭐 이런 거다. 사실 S양도 그렇지 않나? 썸남이 원빈이었다면 "30분 내로 달려와!"라고 해도 달려갔을 거면서...
서로가 서로를 애매하게 여기는 썸의 기간 중에는 유독 자존심을 내세우게 된다. 뭔가 아직 상대가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상대는 나에게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나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꼴이 너무 우스워보이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적극적인 대시를 하지 않으면서도 썸남의 적극적인 대시를 기다리는 것처럼 상대도 적극적인 대시는 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적극적인 대시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이땐 괜히 기싸움하지 말고 일단 타이밍을 잡는 게 우선이다. "그러다 상대방이 날 우습게 보면 어떡해요?"라고 걱정하지 말자. 어차피 서로 기싸움하다가 맘에 드는 사람을 놓치는 리스크보다는 처음에 살짝 모양이 빠져도 일단은 만남을 이끌어 내고 본인의 매력을 어필하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쪽이 훨씬 더 현명한 처세다.
S양의 경우였다면 "갑자기 연락하면 어떡해 이번 주엔 약속 있고 다음 주에 보자"라고 자존심을 세울게 아니라 차라리"뭐야~ 나 선약 있는데! 나 선약 취소할 테니까 대신에 네가 이쪽으로와~!"라고 하는 편이 주도권을 너무 많이 잃지 않으면서도 타이밍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가 저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만 알면 먼저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 있어요. 아니면 확실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요? 그는 저에게 마음이 있기는 한 걸까요? 그는 저에게 마음도 없는데 혼자만 착각의 나래에 빠져 있는 걸까요?
- 타이밍이 왔음에도 자존심을 내세우며 타이밍을 놓친 S양
내가 항상 상담할 때 하는 말이 있다. "WHY가 아니라 HOW를 생각해라." 자꾸만 이건 왜 그럴까? 저 사람의 마음은 뭘까? 이러고 있으면 답이 안 나오다. 무엇을 쟁취하려면 중요한 건 왜? 가 아니라 어떻게? 다.
S양의 경우를 보자. 만약 내가 "썸남이 S양에게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있네요"라고 말을 한다면 S양은 썸남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며 솔로탈출에 골인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다. 내가 뭐라 해도 S양은 "이런 행동은 날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하면서 계속 대시를 주저할 것이다.
헛물을 켤 수도 있고, 다소 모양이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에 집중하자. S양의 목적이 썸남과의 연애라면 썸남이 S양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확실히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기 전까지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시를 하는 게 맞다. S양이 말하지 않았나? 썸남이 S양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만 확실하면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 있다고. 썸남도 S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처음은 모양 좀 빠져도 된다. 상대의 마음을 확실하게 얻고 나면 그때부터는 당신이 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