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디테일함은 괜한 트러블을 일으킨다.
내가 J양의 사연에 대해 이야길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럼 여자는 맨날 참고 살라는 거냐?"라는 댓글들이 달릴까 봐 미리 말하자면 J양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어디까지나 지금부터의 조언은 본인의 선택사항일 뿐이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관계를 조금 더 유지하고 싶다면 답답하겠지만 내 조언에 따라보자.
얼마 전 오빠가 회사 사람들하고 회식 후에 노래방 갔다가 여자를 불러서 놀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 일로 한바탕 큰 싸움을 했고 오빠는 그 이후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하면서 인증도 철저히 해주고 그랬어요. 저는 그래도 그 회사에 다니는 게 탐탁지 않아서 회사를 옮겼으면 좋겠다고 했고 오빠도 알았다고 했죠.
그런다 제가 언제 그만두냐고 물어보니까 다른데 일이 구해지면 바로 그만둘 거라고 했고, 저는 만약 안 구해지면? 했더니 그러면 좀 더 있어야지 않을까? 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응? 그냥 계속 다닐 수도 있다는 거야? 했죠. 그때부터 점점 서로 말이 날카로워지더니 결국 또 싸우게 되었어요.
아... 해줄 말이 너무 많다. 일단 예전에 비슷한 사례를 많이 다뤘으니 몇 가지는 그냥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남자 친구의 부정을 발견했을 때에는 화를 내기보다 단호함을 보여주며 남자 친구가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되 불필요하게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올 수 있고 남자 친구 스스로가 자신의 실수를 반성할 수 있다.
J양은 지금 왜 별것도 아닌 일로 크게 싸우게 되는지 모르는 눈치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 친구의 회식 사건 이후로 J양의 말처럼 남자 친구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인증을 하고, 영상통화를 하며 J양에게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을 했다. 이뿐인가? 심지어 회사까지 옮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J양의 반응은? "응? 그냥 계속 다닐 수도 있다는 거야?"였다는 거다. 쉽게 말해 J양의 남자 친구는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J양은 계속 그날의 일로 의심하고 압박하는 것에 지치면서 짜증이 나는 거다.
여기서 "남자 친구가 먼저 신뢰를 깨는 행동을 했으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면 차라리 이별을 해라. 남자 친구의 말대로 믿어준다고 했으면 J양도 믿어줘야 하는 거다. 깨진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잘못한 사람뿐만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도 함께 노력을 해야 한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신뢰할 때까지 네가 다 노력해!"라고 말하는 건 상대방을 고문하겠다는 거다. 도저히 노력할 수 없다면 차라리 욕을 하고 헤어져라. 그 편이 차라리 깔끔하다.
별것도 아닌 일로 큰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J양이나 남자 친구나 쓸데없이 디테일하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는 이왕 회사를 옮기기로 했으면 "최대한 빨리 옮기려고 노력 중이에요!"하면 될 것을 혹시나 안될 수도 있는 예외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며 J양으로 하여금 말만 옮긴다고 하고 실제로는 옮길 마음이 없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또한 J양은 그냥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옮길 거죠~? 내 사랑?"하면서 슬쩍 지나가면 될 일을 예외의 상황에 대해서도 확실한 대답을 듣고자 캐묻기 시작하니 남자 친구 입장에서는 "아직도 날 의심하는 건가?"라는 느낌에 기분이 상한 거다. 기분 좋지 않은 이야기는 굳이 디테일하게 따지고 들어가지 말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꾸만 압박을 받는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하면서 괜한 감정싸움을 하게 하니 말이다.
오빠는 두 번 다시 그런 일 없을 거고 빨리 옮길 거니까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하고 저는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고 말했어요. 오빠가 알았다면서 지금은 바쁘니까 이따가 얘길 하자했고 저는 제 마음을 확실히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 제 마음에 대해 장문의 카톡을 남겼죠. 이제 좀 정리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서 싸움이 커지더라고요.
J양의 카톡 대화 내용을 보내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진짜 보살이다... 진짜가 나타났다!" J양이 보기엔 남자 친구가 괜한 일에 화를 낸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볼 땐 J양이나 남자 친구나 진짜 보살급의 마인드를 가진 것 같다. 남자 친구가 이렇게 저렇게 정리해서 일단 수습을 하려고 하면 J양은 보다 확실히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리되가고 있던 대화를 다시 하나하나 꼼꼼하가 되짚고, 남자 친구는 다시 수습을 하려 하고 또 J양이....
얼마 전 사무실에 중요한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당황한 나는 어수선한 사무실을 빨리 정리하기 위해 일단 보이지 않는 곳에 잡동사 니들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일을 도와주는 친구는 자꾸 내가 쑤셔 넣은 것들을 꺼내서 하나하나 가지런히 정리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정리를 할 거면 평소에 하던가... 곧 중요한 손님이 들이닥치는데 꼭 지금 정리를 해야 했을까?
지금 J양의 행동은 딱 그 친구와 같다. 뭐든 정리를 잘 해놓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꼭 그때 정리를 해야 했을까? J양이 내게 보내준 대화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단순히 "난 화를 안 내고 차분하게 말을 했는데 왜 남자 친구는 화를 낼까!?"라고 할게 아니라 이유야 어쨌든 상황이 악화되어가고 있는데 J양의 행동은 어땠는가? 상황을 수습하려 했나? 아니면 어떻게든 J양이 속시원할 때까지 이야기를 했는가? 그리고 어떤 행동이 그때 옳은 선택이었을까?
서로 오해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분위기가 극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오해가 많아도 분위기가 필요 이상으로 가열되고 있다면 일단은 그만하는 게 맞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 볼에 기습뽀뽀를 하며 남자 친구가 어맛? 하고 기분 좋아졌을 때 슬쩍 이야기를 꺼내 정리를 하자.
이렇게 잦은 다툼을 하다 보니 이러다 헤어지는 건 아닌지 고민이 돼요. 뭔가 오빠가 시들시들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보고 싶다는 말도 안 하고... 자주 짜증도 내고... 객관적으로 보시기에 저희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또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J양 커플의 가장 큰 문제는 디테일이다. 사랑이 충만할 때에는 서로의 단점도 웃으며 지나갔지만 남자 친구의 행동으로 신뢰가 깨지고 난 이후에는 J양이나 남자 친구나 작은 일에도 꼼꼼하고 예민하게 반응을 하다 보니 그냥 지나갈 일도 쓸데없이 큰 싸움으로 번지고 서로에 대한 실망과 오해가 쌓여가고 있다.
J양이 할 일은 하나다. 관심을 꺼라. 남자 친구의 행동에 온 신경을 쓰면서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지 마라. 오히려 지금은 J양의 그러한 노력이 더 독이 된다. 지금 J양 커플의 관계에는 여드름이 난 거다. 가만히 두면 자연히 가라앉을 것을 억지로 짜려고 만지고 누르고 쪼물딱 거리니까 벌게지고 흉해지는 거다.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써 노력하지 말고 차라리 J양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집중을 해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디테일한 지적으로 노이로제가 걸린 남자 친구는 갑자기 무신경한 J양의 행동에 오히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먼저 J양에게 말을 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