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판타지에서 벗어나자.
J군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그렇게 소설만 썼다간 정말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걸?"
버스에서 운명의 솔메이트를 만났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J군의 마음이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좋아하니까..."라고 생각하기 전에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고 당황스러울 수 있음을 기억하고 상황에 맞게 천천히 상대에게 다가가도록 하자.
두 달 전부터 출근버스 안에서 계속 마주치는 한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버스 안에서 화장을 고치곤 하는데... 작은 손을 바삐 움직이며 화장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더라고요. 제가 타는 버스는 사람이 많이 타지 않아 여유로운 편인데 그녀는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굳이 앉지 않고 항상 둘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몇 주 전쯤 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른 빈자리를 두고 그녀 옆자리에 앉았는데...
픽업아티스트를 비롯해 많은 연애 지침서들은 말한다.
"끌리면 다가가 말을 걸어라!"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그 많고 많은 여자를 두고 하필이면 길에서 만난 일면식 없는 사람을 유혹해야 할까?"
학교 선후배, 직장 선후배, 지인의 지인 등등... 괜찮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는데 말이다.
이런 내 말에 J군은 "바로님은 사랑을 몰라요!"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단호하다.
"길바닥에서 일면식 없는 여자와의 로맨스를 꿈꾸느니
동창회 한 번을 더나 가고, 여러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낫다"
J군아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인터넷 게시판이 심어준 연애 판타지에서 벗어나라.
버스에서 만난 그녀라는 설정이 자극적이고 블링 블링 하겠지만 그만큼 비현실적이다.
일단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호감을 이끌어 내야 하니 J군의 외적 매력이 상당 부분 관여를 하고
상대는 J군이 어떤 좋은 사람인지 판단을 하기보다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아닐지 매의 눈을 뜨고 J군을 관찰하고 테스트할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수고스러움을 감내하면서까지 버스에서 만난 그녀를 고민하는 것인가?
그녀가 J군의 솔메이트라는 확신이 들어서?
J군의 판타지를 깨버려서 미안하지만 J군이 버스 안에서 만난 그녀의 판타지에서 허우적거리는 건
현실에서 J군 주변에 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J군의 로맨스를 모독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생각해봐라.
지금 J군의 곁에는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지인이 얼마나 되는가?
J군아... 지금 J군에게 필요한 건 버스에서 만난 그녀와의 로맨스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J군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 지인을 넓히고 그중에서 자연스럽게 연애 라이프로 골인하는 것이다.
그녀는 정말 향이 좋은 향수를 씁니다. 상큼하고 달콤한 과일향이 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무슨 향수를 쓰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또한 항상 조그마한 참빗과 손거울로 머리를 빗는데 정말 귀엽더라고요... 제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은 또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J군아... 자... 잠... 깐! J군의 당부 때문에 차마 자세한 설명을 첨부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오글거리는 진지한 생각들은 잠시 접어두자... 아직 J군은 그녀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 이런 과도한 진지 함고 오글거림의 마음은 J군에게 달콤한 사랑의 환상을 심어주겠지만 덕분에 과도하게 긴장을 하게 하거나 부담스러운 멘트와 행동으로 상대를 당황시킬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J군과 그녀는 일면식 없는 그저 버스를 같이 타고 다니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명심하란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자유지만 혼자서 오버를 하고 당황스러운 멘트를 던지는 건 상대에게나 J군에게나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고집하는 건 어쩌면 자신의 가방을 놓기 위함일 수도 있다...
J군에 모든 감정은 상대와 템포를 맞춰야 한다. 상대와 이렇다 할 친분이 없을 때에는 편한 미소와 가벼운 인사가 어울리지 말없이 옆 앉아 혼자서만 상대의 매력에 감탄을 하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던 지지난주 저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따라 내렸습니다. 수줍게 그녀에게 번호를 물어봤다니 그녀도 수줍게 번호를 알려주더라고요! 저는 그날로 카톡으로 인사를 했고 그녀는 늦긴 했지만 답을 해주었습니다. 근데... 그녀는 뭔가 예의상 답을 해주는 것 같았고... 제가 주말에 약속이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번 주부터는 일부러 그녀가 있는 버스를 타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J 군이라면 애초에 출근버스 안에서는 전날 모임에서 쌓인 피곤을 해소하기 위해 잠을 청했겠지만 정말 이 사람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달려가 번호를 묻기 전에 일단 인사를 먼저 시작했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자주 뵙네요~"라는 간단한 인사를 던졌다면 다음날은 "머리스타일 바뀌셨네요?"하고 말을 건네고 그다음 날은 "이거... 너무 자주 보는.... ㅎㅎㅎㅎ"라며 농담을 던져봤을 것 같다.
어차피 매일 버스에서 볼 사이인데 조급 해할 건 또 뭔가? 혹시나 급했다면 번호를 받았어도 일단은 간단한 안부 톡만 하고 그다음 날부터 직접 만나면서 대화를 건네는 게 순서상 맞는 거다.
J군은 몇 주간 그녀를 관찰하며 사랑을 키워왔겠지만 그녀 입장에서 J군은 몇 주 전부터 갑자기 자기 옆에 앉기 시작한 행인 1이지 않은가? 그런 그녀에게 대뜸 번호를 물어보고 대놓고 주말에 만나자고 하니... 그녀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어찌 그것만인 문제겠느냐, 애초에 J군이 그녀의 이상형에 정확히 부합했다면 당황스러움 속에서도 한 번쯤 만나볼까? 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 전화번호를 받고 나서 카톡으로 디렉트로 데이트 신청을 할게 아니라 회사는 어느 쪽이세요? 따위의 자연스러운 호구조사를 시작하였다면 또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모든 게 지난 일인걸! 이제 J군이 할 일은 하나다.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그녀가 타는 버스에 올라 자연스레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네자. "오! 오랜만이네요? ㅎㅎㅎㅎ"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그녀와 데이트를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며 그녀와 친해지는 데에 집중을 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버스에서 말고 솔메이트는 당신의 주위 혹은 지인을 통해 찾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