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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로맨스 Aug 01. 2017

만나는 사람 때문에 너무 속상해요

나의 아픔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평균보다 살짝 위의 연애경험을 겪어보고, 무엇보다 수많은 연애 사연을 듣고, 또 그 사연들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은 "어떤 일이 생겨도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처음 이별을 겪었을 때에는 정말 심장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또 어떻게 이런 이유로 헤어질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서로 많이 노력했으니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이 서로를 위한 일 일수도 있는 거야" 정도로 마무리가 되곤 한다. 



'인생은 끔찍하거나 비참하거나 둘 중 하나다.'영화 <애니 홀>에서 우디 앨런은 인생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뭔가 끔찍한 경우를 당했다면 오히려 안도해야 한다, 고 그는 진지하게 주장한다. '아아, 끔찍한 일 정도여서 다행이야, 비참한 일은 아니어서 살았네'하고.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끔찍한 것과 비참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워낙 많은 사연을 받다 보니 정말이지 보통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사연들도 많이 받게 된다. 알고 보니 여자 친구가 둘을 소개해준 친구와 썸을 타고 있었다던가, 남자 친구가 10 여살 연상의 직장상사의 부인과 내연관계를 갖고 있었다던가, 여자 친구가 다섯 명의 남자를 동시에 만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었다던가 하는 사연들 말이다. 


이런 우디 앨런이 말하는 비참한 경우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숱하게 체험을 하다 보니 내가 겪은, 혹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연인이 마음이 변했어요!", "연인이 클럽에 갔어요!", "연인이 어플로 다른 사람과 썸을 타요!" 등등의 사연은 자연히 끔찍한 정도로 느껴지게 된다. 


물론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있나도 나의 아픔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 지인의 남자 친구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든 말든 내 남자 친구가 채팅어플을 했었다는 게 나에게는 더 충격이고 아픔인 거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이 주는 상처에 조금은 의연해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준 상처의 아픔에 집착하다 보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결국 관계를 망치고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 따라 연락이 뜸한 남자 친구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다며 화를 내다가 이별을 한다던가, 어떻게 채팅어플로 다른 남자와 채팅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지다가 이별을 한다던가 하는 경우 말이다. 


물론 "그러한 상처를 주는 사람과는 더 만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죠!"라는 마음이 굳건하면 상관이 없겠다만... 내게 사연을 보낸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별을 하고 나서 "그때 좀 더 참을걸...",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도 있었는데..."라고 후회를 하곤 했다. 


연애를 하다 보면 상대방은 내게 행복을 주기보다 끊임없이 아픔을 줄 거다. 그때마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을까!?"라며 가슴을 치며 아파하고 상대를 비난한다면 당신에게 연애란 비참하기만 하지 않을까? 물론 상대가 내게 어떤 상처를 주든 모두 견디고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상대가 내게 상처를 줬을 때 "뭐, 그래도 이 정도쯤은..."이라고 생각하며 상처에서 한발 물러나 상황을 이성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마트에서 약간의 하자가 있는 제품을 고를 때처럼 말이다. "음... 요건 유통기한이 임박하긴 했지만 50% 할인이니까..."라며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을 하던가 "아무리 반값이지만 이 양파는 너무 물러서 못쓰겠다"라며 상대를 심하게 비난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별을 택하던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길 바라는 건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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