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자만 참냐! 여자가 무슨 보살이냐!?
화를 내지 말라는 나의 평소 지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갖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주로 "왜 여자만 참냐! 여자가 무슨 보살이냐!?", "남자가 잘못을 했으니까! 화를 내는 거지!", "참아도 달라지지 않던데!?" 따위의 주장을 하는데...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건 "참는 건 손해 보는 것이다!"라는 인식이다. (내가 제대로 파악한 게 맞겠지?) 재미있는 건 내가 일단 분노를 조절하고 대화로 풀어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건 "일단 분노를 참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당신은 화를 잘 내는 타입이신지?
나도 젊은 시절에는 쉽게 버럭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레짐작하거나 사실을 오인하여 화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잘 알아보고 화를 내야겠군'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슨 일인가로 확 열이 받아도 그 자리에서는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한숨 돌렸다가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에 '이 정도라면 화내도 되겠어' 싶을 때 화를 내기로 했다. 이른바 '앵거 매니지먼트'다.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中 앵거 매니지먼트,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상대에게 화를 내는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화를 내고 나서 내가 화를 냈기 때문에 따라올 불이익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를 하고 화를 내자는 거다. "아니! 이게 뭐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생각을 해서 화를 내는 건 좋다. 다만 이후 상대가 "그래... 미안해...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고 말을 해도 "그래!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 사람과 만날 생각 없어! 너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라고 사이다 같은 말을 내뱉고 미련 없이 이별을 할 수 있다면 절대로 화를 참지 말고 화를 내도록 하자!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다.)
물론 화가 나는 입장에서는 "아니! 벌서 몇 번째야! 화를 안 낼 수가 없잖아! 또 참아야 하는 거야!?"라고 답답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럴 땐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은까? "흠... 벌써 3번째 약속을 어기네... 혹시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음... 다른 방법 다 써봤는데... 아무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더 만날까? 아니면 화를 내고 쫑!?"이라고 말이다.
계속 말을 하지만... 화를 내는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지! 다만 화가 나서 정의의 심판자 마냥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고 정의로운 분노를 쏟아놓고 상대가 "그래... 그랬구나... 미안해... 근데 우리 아무래도 잘 안 맞나 봐..."라는 지질한 말에 바로 "아냐... 자기야...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어... 내가 잘할게..."라며 매 달리는 건 모양이 좀 많이 빠지지 않냐는 거다. 이뿐인가? 이렇게 한번 "내가 다 맞출게!"식으로 말을 내뱉고 나면 협상의 여자기 사라지고 100% 내쪽에서 맞춰야 하는 암묵적 노예계약이 성립된다는 걸 너무 많이 보아왔다.
나 또한 하루키처럼 젊은 시절에는(뭐... 지금도 젊은 시절... 이긴 하다만...) 쉽게 버럭 하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타고난 독설 DNA를 한껏 발휘하여 상대가 아무 말 못 하게 궁지에 몰아넣고 현란한 비꼬기 기술로 상대를 유린하곤 했다. 그러고 나서는 "역시! 내가 옳아!", "누가 날 건드리래!?", "만약 먼저 내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덕분에 별일 아닌 일로 많은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화를 내면 내 손해구나?" 특히나 화를 퍼부어 놓고 내가 아쉬워서 상대에게 아쉬운 말을 할 때에는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고 수치플이 또 그런 수치플이 없었다.
과연 이것이 화를 내야 하는 일인가? 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일단은 진정하고 화를 내는 것과 대화를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이득인지를 따져보는 건 어떨까? 상대를 배려할 필요도 없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서 고민을 해보는 거다. "어느 것이 내게 이득일까?" 그리고 그 선택을 따르자, 또한 그에 따르는 것에 대해서도 쿨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사 표 한 장씩 품고 회사 다니면서 뭐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해보는 건 또 어떨까? 꼭 화를 내야 하는 일이라면 조금 시간을 갖고 이해타산을 따져 보고 나서 화를 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것 또한 너무 보살 같은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