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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로맨스 Oct 06. 2017

'롤리타'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남자 친구 외 1편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K양의 사연을 읽다 보니 내가 대학 신입생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 신입생 시절 공강 시간에 강의실에서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있는데 한 선배가 지나가며 내게 "너 빨갱이냐?"하며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니... 대체 체 게바라 평전을 읽어보긴 한 걸까? 여기에 무슨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내용이 있다고;;; 내가 읽은 체 게바라는 조국도 아닌 다른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혁명가일 뿐인데 말이다. (아... 이러다 빨갱이 소리 듣는 거 아냐...!? ㅎㄷㄷ...)

남자 친구가 '롤리타'를 감명 깊게 읽었데요...


예전부터 남자 친구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건 알았지만 딱히 들어가 보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함께 다녀온 맛집을 검색하다 남자 친구의 블로그를 찾았는데 그곳에 남자 친구가 지금까지 읽은 여러 책들에 대한 카테고리가 있더라고요. 심심할 때마다 읽어봤는데 1년 전쯤인가? (저를 만나고 있을 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었더라고요. 문제는 남자 친구의 감상평 중 "사랑이 꼭 모두에게 공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은 사랑일 뿐인데..."라는 부분을 보는데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남자 친구에게 이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니까 남자 친구는 별거 아니라며 단지 작품에 대한 감상일 뿐이라고 말을 하네요. 올해 초부터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배신감이 느껴져요... 이런 사람 믿어도 될까요...? 나중에 결혼해서 수시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면 어쩌나 싶고... 제가 알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걱정이 되네요.
- 결혼을 앞두고 남자 친구의 사상? 이 걱정되는 K양

K양이 남자 친구의 블로그를 보고 얼마나 놀랬을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게 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판매 금지 조치도 받았었던 작품을 보며 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상평을 쓰다니! 혹시 K양의 남자 친구는 소아성애자!?!?!? 


분명 남자 친구의 감상평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자 친구에게 추궁하기 전에 한 번쯤은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얘를 들어 K양도 롤리타를 구해서 한번 읽어보고 나서 남자 친구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거다. 아마 그랬다면 K양이 지금처럼 불안해하지 않았을 텐데...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스탠리 큐브릭전'을 관람했었다. 스탠리 큐브릭이라고 하면 샤이닝,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1962년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영화화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영화도 구해서 보고 무엇에 끌렸는지 책까지 읽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렵다'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그러니 K양아 꼭 소설 '롤리타'를 읽어보자. 이 글을 읽어 보고 남자 친구의 감상평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남자 친구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처음 시작은 "뭐지 이 남자!? 소아성애자였어!?"로 시작했겠지만 자연스레 문학적인 이야기와 조금 고차원적인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매일 입으로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잘못된 것 나쁜 것이라고 규정을 짓고 상대를 비난하려고 든다. 물론 이 세상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기 전에 상대방이 정확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봐야 한다는 거다.  



썸남이 진지한 관계는 회피하는 것 같아요...


썸남과 알고 지낸지는 이제 1년이 좀 넘었네요. 저희는 어플을 통해 만났고 어쩌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잠자리를 갖게 되었어요. 그러다 제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했더니 썸남은 대답을 회피하다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제가 썸남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내서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어요. 그 이후로 계속 비슷한 관계의 반복이네요. 시간이 달수록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제가 좀 더 다가가려고 하면 자꾸 회피하는 느낌... 저는 이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은데.. 썸남은 아닌 것 같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가볍게 시작해서 마음이 무거워진 H양

참... 이걸... 뭐라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썸남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초반에 H양이 관계에 대해 묻자 회피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물론 H양이 관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관계에 대한 확답만 요구하지 않으면 마치 사귀는 것처럼 무척이나 잘해줄 것이고 때론 이런저런 질투도 할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 H양은 희망을 갖는 것 같은데... 희망은 희망이지만 그리 확률이 높은 희망은 아니라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H양의 말처럼 썸남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고 이 이상 관계를 발전시키기보다 현재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물론 H양이 주도권을 가져와서 잠깐 사귀는 단계로 발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관계를 얼마 갈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과 노력을 해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혹시나 H양이 포인트를 잘못짚을까 봐 말하는 것인데 H양의 실수는 어플에서 만난 것도, 첫 만남에 잠자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H양의 진짜 실수는 책임감 없는 관계를 1년씩이나 끌어놓고 이제 와서 책임감 있는 관계를 만들고자 함이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H양이 말했듯 이제 진지한 관계를 만들어야 할 나이인데 이 관계를 뒤집는 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뿐이다. 


H양아, 조금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꼭 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H양이 진짜 원하는 관계가 무엇인지 지금 필요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며 차분히 정리해나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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