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닐라로맨스 Nov 17. 2018

남자 친구에 대한 감정을 모르겠어요

애매한 감정 그 자체일 뿐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고민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좋음과 싫음 둘 중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으려는 것은 좋지 않다. 항상 말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흑과 백이 아닌 포토샵 팔레트처럼 셀 수 없이 다양하니 말이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애매하고 잘 모르겠다면 그건 고민할 거리가 아니라 그냥 애매한 감정 그 자체일 뿐이다.


  

현재 저는 2년 연애를 하고 있는 와중에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 갈등의 최고조를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 고민은 제 남자 친구에 대한 감정이 애매해서 관계를 정리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제가 미숙하여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설렘이 사랑의 진위를 파악하는 척도는 아니겠지만 2년의 연애기간 중 한 번도 남자 친구를 보며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네요... 그리고 일 년 전부터 이 관계를 정리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었고요... 물론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함께 있으면 편하고 즐거워요. 분명 다른 지인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정이지만 이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아서 혼란스러워요...
사랑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면 이별을 말하기가 쉬울 텐데 그것도 아니고...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고 헤어졌다 후회할까 결정을 못 내리겠네요... 제가 남자 친구를 진짜 사랑하는 걸까요...? 냉철한 조언을 부탁드려요...
- J양


일단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랑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은 이렇다. '사랑 [명사]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적어도 사전에는 설렘이라는 단어는 들어가 있지 않다. 


실제로도 그렇다 불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세대만 하더라도 결혼할 상대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결혼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그러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지금 J양이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냐 아니냐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일단 그 감정은 그 나름의 사랑이 맞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볼 건 사랑이라는 것은 별다방의 메뉴처럼 종류가 많다는 거다. 


잔 하디 못해 쓴 에스프레소부터 달콤한 캐러멜 마끼아또, 그리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각자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커피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듯이 J양이 남자 친구와 나누고 있는 감정 또한 사랑이 맞다. 


결국 J양이 "설렘이 없는데 사랑이 맞나...?"라고 하는 건 캐러멜 마끼아또를 마시면서 "이렇게 달달한데 커피가 맞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다. 


그렇다면 역시! 구관이 명관!이니 남자 친구와 잘 지내야 하는 걸까!? 아쉽게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것도 아니다. 내가 J양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J양이 고민의 관점을 조금 달리해보는 건 어떤지에 대한 것이다. 


J양은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남자 친구와의 감정에 대해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이유는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년 전부터 고민을 해왔다며 새로운 사람의 문제가 아닌 남자 친구와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봐라 지난 1년 동안 계속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지를 말이다. 아마 헤어지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떨 때에는 남자 친구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 보일 때도 있었을 거다.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감정이 사랑이 맞는지, 헤어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급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는 이유가 새로운 사람의 등장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다른 사람은 J양을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난 그러고 싶은 생각도 그럴 마음도 없다. J양이 지금 느끼는 혼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봤을 감정이니 말이다. 


지금 J양의 상황에서 해야 하는 고민은 J양이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감정이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지금 J양이 원하는 것이 변화인지 안정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아니 오히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고민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떤 선택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그 선택으로 흘러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문자는 주고받으면서 만나주지는 않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