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화를 내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나?
연인과의 문제를 '화'로 해결하지 말라는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명료 하다.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했는데 나는 그러면 맨날 참고 살라는 거냐?" 정말 단 한 군데도 틀린 말이 없는 완벽한 문장이다. 상대가 화를 낼만한 원인을 제공했으니 나는 그 결과로 화를 내겠다! 이 얼마나 진리와도 같은 말인가?
"연인이 갑자기 연락을 잘 안 하더라고요! ", "연인이 약속을 안 지켰어요!", "연인이 나를 배려하지 않았어요!" 등등 연인이 당신을 화나게 할 행동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래! 이러한 행동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들기 충분하다! 당신의 화의 원인은 분명 상대에게 있고, 상대가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절대로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당신은 화를 내도 된다!
다만 내가 이 절대적 진리에 반대표를 던지는 건 당신의 행동이 과연 당신의 목적과 부합하느냐를 따져보자는 거다. "오빠 왜 요즘 연락을 이렇게 잘 안 해!?"라고 짜증내고 화를 내는 사람의 목적은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좀 더 신경을 써주고 연락을 자주 해주길 원한다. 또 "야! 너 왜 약속을 어겨!"라며 화를 내는 사람은 연인이 약속을 잘 지켜주길 바라고 또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길 원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거다.
당신의 '화'는 분명 정당한 분노다. 상대방이 원인을 제공했으니 당신이 화가 나는 것이고, 상대방이 원인제공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당신은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다만 당신이 화를 내면 상대방이 당신의 바람대로 움직여주던가?
당신이 화를 내고 난 이후의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오빠 왜 요즘 연락을 왜 이렇게 잘 안 해!? 손가락 부러졌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라고 말하면 남자친구가 "자기야 너무 미안해 ㅠ_ㅠ 앞으로는 잘할게요..."라고 말을 하고 실제로 연락을 자주 하던가? 아마도 "내가 요즘 바빠서 그래! 이것도 이해 못해줘?" 또는 "내가 뭘 얼마나 안 했다 그래!"라고 반박을 하며 더 큰 싸움이 돼버렸을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당신이 화를 내는 건 정당하다. 그리고 마땅히 화를 낼만한 상황이다. 다만 아무리 정당하고 마땅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이라 한들 '화'는 절대로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만은 인정하자. (이미 수백번 경험해봤잖아?) 화가 나면 화를 내라. 분명 그 행동은 정당하니 말이다. 다만 화를 내고 나서 트러블이 더 심해지는 것만 명심을 하자.
화를 내는 것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화는 트러블의 해결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만 명심하라는 거다.
화를 내며 당신의 불쾌한 감정을 푸는 것이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화를 내라! (물론 이에 대한 부작용도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의 목적이 상대와의 트러블을 해결하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보자.
몇 해 전 초 무시무시하게 추운 겨울날에 나는 약속 장소에서 여자친구를 기다렸다. 분명 3시에 만나기로 했고 시계는 3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추워서 어디 들어가 있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왠지 곧 올 것 같아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항상 이런 예상은 빗나간다.) 또 10분 흐르고 또 10분이 흐르고... 3시 30분이 되어도 여자친구는 나타날 생각을 안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과연 언제까지 늦나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마냥 기다렸다. 50분쯤 되니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하다 동상 걸릴뻔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결국 여자친구는 4시 8분... 내가 너무 추워 정신이 나가기 직전에 도착했다. 나는 화를 냈을까? 문맥상 예상했겠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나 너무 추워, 다음부터는 늦으면 늦는다고 말해줘"라고 말했을 뿐이다. 왜 나는 화를 내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내가 얼굴을 구기고 입으로 화를 내면 상대는 미안한 마음을 갖기보다 변명거리를 찾으려고만 하고 화를 내는 내게 불만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입으로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이제 오는 거야!!!! 얼어 죽을 뻔했잖아!!!"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내 코와 귀는 새빨갛게 변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 몸 전체가 여자친구의 양심을 자극하고 있었고 나는 한마디 화도 내지 않았지만 여자친구는 하루 종일 내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다신 늦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럼 이날 이후 단 한번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았을까? 물론 이날 이후에도 가끔씩 늦기도했다. 다만 혹시나 내가 또 먼저 와서 힘들게 기다리지는 않을지를 걱정하며 계속 전화를 하며 사과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속 장소에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으로 당신을 화나게 했나? 상대가 그러지 않길 바란다면 '화'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보자. 당신이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얼마나 아파하는지를 상대방이 직접 느끼게 만들어 볼 수도 있고, 당신이 원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당근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양식중단기법 등과 같은 보다 전문적인 방법을 사용해 볼 수도 있다.
이쯤 되면 트러블을 '화'로 해결하는 사람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들 거다. "나도 좋은 말로 하고 싶다고! 근데 상대방이 들어먹질 않는걸 어쩌라고!" 물론 당신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도 계속해서 당신을 화나게 하는 연인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어떤 노력을 동원해도 변하지 않던 사람이 당신이 소릴 빽! 지르면서 화를 내면 당신의 말을 듣고 행동을 교정할까? 이럴 때는 "내가 화를 내면 알아먹겠지?"라고 생각할게 아니라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 화를 내고 끝내자!"가 맞다. 이쯤 되면 당신도 '화'라는 것의 용도를 눈치챘을 거다.
화는 트러블을 해결할 때 쓰는 게 아니다. 관계를 끝낼 때 쓰는 거다.
마지막은 틱낫한 스님의 '화'중 한 구절을 함께 음미해보자.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는 평생 화를 전혀 내지 않고 살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내는 '화'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잊지 말자.
만약 당신의 집에 불이 났다고 쳐보자. 그러면 당신은 무엇보다 먼저 그 불을 끄려고 해야 한다. 방화범의 혐의가 있는 자를 잡으러 가서는 안 된다. 만약 집에 불을 지른 걸로 의심 가는 자를 잡으러 간다면 그 사이에 집이 다 타 버릴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당연히 먼저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 화가 치밀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화나게 한 상대방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계속 그와 입씨름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불이 붙은 집을 내버려두고 방화범을 잡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이다.
- 화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Anger), 틱낫한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