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상황을 배려하며 상대를 좀 더 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좋은 데이트라는 건 뭘까? 유명한 맛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 들러 와인을 즐기며 떨어져 있었던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뭐... 그것도 좋은 데이트일 수 있다. 그러면 집에서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노트북으로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는 건? 물론 그것도 좋은 데이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데이트라는 건 만나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상황을 배려하며 상대를 좀 더 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는 건 아닐까?
이제 두 달째 사귄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20대 후반... 남자 친구는 30대 중반... 남자 친구는 토익강사고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스케줄이 잘 맞지 않기는 해요. 문제는 한 달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모든 데이트가 그 사람의 집에서만 이뤄진다는 거죠... 남자 친구와 집이 가까운 편이라 제가 남자 친구 집에 가면 저녁 먹고 디저트도 먹고 므흣한 시간을 보내고 제 집까지 데려다주는 데이트의 반복...
집 근처 극장에서 영화라도 보자고 하면 집에서 보면 되는데 왜 나가냐고... 왔다 갔다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가타고 하네요. 또 한 번은 속초 쪽으로 여행을 갔는데 피곤하다면서 숙소에만 있으려고 하더라고요. 며칠 전에는 집 근처에서 밥을 먹자고 했더니 억지로 따라나서 놓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무심하게 밥만 먹더라고요...
솔직히 잘생기고 키도 크고 돈도 많이 버는 능력남에 인기도 많은 사람이다 보니 불만을 말하기도 뭔가 어렵고... 그러네요... 제가 예민한 걸 까요? 혹시 남자 친구는 저를 성적으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바로님께서는 어떻게 연애를 하시나요? 제가 지루하고 욕구를 푸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제 연애에 대한 바로님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 E양
솔직히 E양의 사연을 보고 내심 뜨끔했다. 꼭 데이트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밖에 나가서 유명한 맛집도 가고, 핫플레이스도 구경하고 전시나 공연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나가볼까 하고 생각을 하면 금세 머리가 지끈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하고, 차를 가지고 나가자니 주차가 걱정되고 그러다 술이라도 한잔하면 짐짝이 되어버린다. 이뿐인가? 핫플레이스엔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유명한 맛집은 기본 20~30분 웨이팅을 해야 한다.
밖에 나갈까? 하는 생각만 했는데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며 머리가 지끈하다 보니 자연히 "집에서 뭐 만들어 먹을까...? 참...! XX치킨에 신메뉴 나왔던데? 아니면 맛집 배달 서비스도 괜찮고!"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곤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의 메커니즘이 합리적이고 옳으니 모든 데이트를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나도 막상 나가기 귀찮은 혹은 겁이 나는? 마음을 이겨내고 오랜만에 밖을 나가면 왜 그동안 히키코모리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으려 했었나 싶기도 하다. 문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또 밖에 나가기 귀찮아진다는 것...
만약에 여자 친구가 나의 이런 성향을 애정과 연결 지으며 "혹시 나를 성적인 목적으로만 여기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당황스러울 것 같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E양이 남자 친구가 단지 집 밖에서 데이트를 잘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남자 친구가 성적인 목적으로만 만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정 의심된다면 스킨십을 줄여보고 상대의 반응을 보며 판단해도 늦지 않지 않을까?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억지로든 밖으로 나가서의 태도가 부정적이라는 거다. 이것이 학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지쳐서 일수도 있고, E양의 걱정처럼 애정이 전혀 없어서 일 수도 있으나 어느 쪽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 E양 입장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막상 밖에 나와서도 피곤해하는 사람을 매번 밖으로 끌고 다닐 수는 없을 테니... 그런데... E양의 고민을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크게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여사친이 "난 그냥 잘생기면 됐어"라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그럼 능력 없어도 괜찮아?", "만약 널 많이 좋아하지 않으면?" 하고 물었더니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능력은 내가 좋으니까 됐고, 날 안 좋아하면 내가 날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애매한 X이랑 지지고 볶는 연애 하느니 잘생기고 능력 없는 무뚝뚝한 남자를 꼬시는 게 낫지"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여사친의 기준에 의하면 E양의 남자 친구는 잘생기고 키도 큰 데다 능력까지 있는 꽤나 괜찮은 남자에 속한다. (인기가 많은 건 장점이기도 좀 흠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니 꾹! 참고 집돌이 성향의 남자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맞춰줘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나의 독특한 여사친의 사고방식대로라면 데이트는 E양의 여사친과 함께 핫플레이스를 돌아다니며 맛집을 즐기고 새로운 전시도 구경한 다음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 친구랑은 집에서 맛집 배달 서비스를 통해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잘생긴 남자 친구 얼굴을 관람하는 것도... 꽤 괜찮은 데이트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꼭 밖에서 하는 데이트가 아니라면 절대 싫다면야... 서로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수밖에 없겠지만...
그나저나 큰일이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잘생기지 않았으면 밖에 나가는 게 귀찮고 머리가 지끈해도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야외 데이트를 해야 하지 않은가? 방구석 데이트 자체가 나쁘진 않겠다만... 여자 친구 입장에서는 음식은 그렇다 치고, 즐겁게 관람한 잘생긴 얼굴이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