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태어나고 보니 이미 우리 집에 주인공인 여자아이가 있었다. 내 누나다. 당시에야 제법 다르게 생겨서 누구인가 했을 법도 한데, 그래도 이 집에 먼저 왔으니 배울 것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했던지 어딜 가든 누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누나는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났지만 나를 챙기곤 하였고, 어렸을 적에는 몸이 약했던 나로 인해 집안에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틈만 날 때마다 누나에게 잘하라고 내게 이야기하신다.
우리는 줄곧 동지 관계였다. 또 원수 관계이기도 했고, 경쟁자기도 했다. 부모님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할 때는 그렇게 죽이 잘 맞는 동지도 없었으리라, 이심전심하여 착착 부모님을 설득하곤 하였다.
반대로 서로 뜻이 맞지 않을 때는 작은 일에도 원수 관계가 되곤 하였는데 같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으니 부모님의 원수까지는 되지 못하였지만, 다시는 쳐다보지 않으리라 다짐할만한 원수가 되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러고는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서, 누가 더 잘 빨리 많이 먹는가 경쟁을 하곤 하였다.
이런 우리의 관계도 사춘기에 들어서며, 13년 내내 누나보다 작던 내 키가 독일에 가서 먹은 치즈와 소시지 덕분인지 누나를 앞서기 시작하며, 변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아무리 열심히 경쟁하듯 먹어도 왕성한 청소년기에 남자아이의 식욕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이제는 키도 체구도 힘도 누나보다 세지고 강해져서 웬만해서 지지 않을 누나였음에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좋은 동지 사이이긴 했다. 경쟁자로서의 관계도, 원수의 관계도 더는 성립되지 못했지만,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독일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우리를 동지로 머물게 하였다. 기껏 만들어 놓았던 한국의 친우 관계도 이제는 다 사라져 버렸고 그 학교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뜻을 소통할 수 있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이 누나와 나였다.
그래서 누나가 다른 학교로 가기까지, 서로 독일어 실력이 쌓이고 친구를 사귀어 낼 때까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동지 관계로 지내게 되었다. 독일어 선생님 험담도 참 많이 했고, 간식을 먹으러 다녔으며, 독일어 수업에 들어가 엉뚱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독일어 수업 땡땡이도 제법 많이 쳤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한 명 한 명 친구가 생기자 그 동지 관계 동맹 관계가 매우 약해지게 되었고 부모님 몰래 땡땡이를 치게 될 때만 그 관계가 고개를 들곤 했다. 그래도 서로 함께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서로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남발하곤 했다. 부모님은 아셨겠지만 그런 우리의 노력이 가상하셨는지 속는 척해주시곤 하셨다.
이런 희미한 관계마저도 완전히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적도로 옅어지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10년간의 독일 생활이 끝나고, 부모님은 한국으로, 나는 벨기에로, 누나는 독일에 남게 되었을 때이다.
1년 중에 누나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몇 번 누나를 보았던 게 다였다. 이후 누나가 한국으로 가면서 더 멀어지게 되었다. 누나도 나도 그때부터는 친구 중에서 이런 동지 관계를 쌓아갔다. 이후 한 10년은 각자 알아서 살았다. 오래 떨어져 지낸 20대에는 서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30대에는 내가 학업과 일로 바빴고, 얼마 안 되어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하니 새로운 동지가 생겼다. 아내는 나에게뿐만 아니라 누나에게도 좋은 동지가 되었다.
자매가 없던 누나에게 자매까지는 아니어도 여자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동지가 되었고, 이후 어머니가 아프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이동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동지가 되어 아픔을 토로하고 문제를 삼켜내며 힘든 일들을 견뎌내는 동지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평생을 지낼 것 같더니만, 누나가 새로운 동지를 데리고 왔다. 4년 전 일이다. 누나를 친구네에서 데리고 오는데 결혼 발표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누구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찬성하였다. 평생을 결혼 안 하고 지낼 거로 생각했는데, 그 누나가 새로운 동지를 데리고 온다니. 더군다나 평생 형제가 없던 나로서는 친구를 잘 사귀어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새로운 만남이 설레기까지 했다.
처음 본 매형은 군인이었고, 당당했고, 매우 수줍어했다. 수줍음으로 치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나였지만 이미 경험해 본 유경험자로서 처음 처가에 방문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매형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그 노력이 효력이 있었는지는 안타깝게도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누나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한다고 하니, 내게는 새로운 동지가 생기는 일이었기에 그저 좋았다.
매형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착한 사람이었다. 배려를 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게 익숙지 않았지만, 그 배려와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가진 바를 다해서 또 그 배려와 사랑에 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매형이 좋았고 함께 이겨내야 할 여러 아픔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뒤를 맡길만한 좋은 동지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좋은 동지, 매형이, 지난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에게 밀려오는 질병의 파도를 이겨내고자 누나와 함께 부단히 도 싸우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허락하신 시간이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고단한 질병과 싸움을 뒤로하고 하나님 곁으로 간 매형의 모습을 보며, 스러져가는 그의 형체를 보며, 과연 나는 좋은 동지였는가, 한숨만이 나왔다.
처음에는 둘이서, 그러다가 셋이서, 넷이 되었는가 했는데, 이제 다시 셋이 되었다. 앞으로 일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이전 독일 학교에 다니던 때에 동지 관계를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내 아내도 함께하여 셋이라면, 또 험난한 세상 잘 이겨내지 않을까.
워낙 씩씩한 누나이기에 좋은 친구들도 많기에 수줍은 나와 아내가 그사이에 설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나만이라도 옛적의 기억을 떠올리며 노력해 보아야 하겠다. 그래, 내가 있으니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고개를 빳빳이 들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