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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Nov 19. 2021

쓰고 싶어지는 기분

<쓰는 기분> 박연준 산문


한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팠는데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좀처럼 글을 써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무심한 가시처럼 닿을까 봐 겁이 났다.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얻은 이번 육아휴직 기간에는 육아서를 읽지 않으리라, 그리고 '육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을 만나 아이를 키우는 것 외의 대화를 많이 하고자 마음먹었다. 내가 쓰는 글에서도 웬만하면 아이 말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차피 내 모든 일상이 두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함께 놀아야 하는 시간일 테니 '비육아 시간'을 이렇게라도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런치 결산서에서 '육아 전문'이라는 배지를 보고 어쩔 수 없는 내 자리를 또 한 번 확인했다.


내가 찔린 그 가시는 내 육아 방식과 관련된 비난이었다. 나를 특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평소에 계속 찝찝해하던 포인트가 언급되어 너무 아팠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상황은 모두가 다르므로 항상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소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 육아뿐일까. 모두의 앞에 놓인 각자의 삶은 똑같은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꺼내놓다가 다른 사람의 삶을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럽다. 그래서 쓰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러다가 박연준 시인이 다정하게 엮은 산문집 <쓰는 기분>을 읽었고, 간만에 뭔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이 책을 추천해준 책방지기의 말처럼 정말 쓰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오늘 밤 자리에 누우면 당신은 '흰 바람벽'을 하나 가지게 될지 모릅니다. 그 위로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한 것들이 훠이훠이 지나다니도록 두겠지요. 흰 바람벽 위로 지나다니는 글자들이 있어, 당신을 다른 세계로 데려갈지도 모르겠어요. (박연준, <쓰는 기분>, p.42)


어느 , 나의 원가족이 살고 있는 친정에서  책을 읽어서였을까. 나의 ' 바람벽'  눈동자 위에 떠올랐고  위에 고여 넘실대는 여러 존재들이 보였다. 물론  안에는 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다행히  안에는 '' 많이 있었다. 과거의 내가 사랑하고 외로웠던 여러 장면들, 현재의 내가 넘기고 있는  페이지의 감촉들, 크리스마스 조명 속에서 보일  말듯한 미래의 두려움과 두근거림까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쓰고 싶어졌다.


다정한 책 덕분에 다행스러운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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