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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Nov 29. 2021

너의 글에서 나를 만나

일산 '너의 작업실' 매일 글쓰기 글방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던 문장이다. 6년 모두 다른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어쩜 다들 똑같은 말씀을 적어놓으셨을까. 아마도 내가 초등학생 6년 내내 그런 일관된 성향이었나 보다.(아니, 근데 무슨 1학년 때도 나는 이랬을까)


어른이 되어 이제 30대의 끝자락에 다다른 나는 그간 조직에서 원하는 사회적 가면 착장에 성공했다. 10년을 넘게 다닌 이 회사에서 나는 당차고 적극적인 여장부 슬차장이다. 물론 그 모습도 거짓은 아니지만 종종 그 모습이 스스로 의아하고, 꽤 자주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내성적이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이 다수 모여있는 자리가 불편하다. 업무차 회의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마지못해 참석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 나서서 참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임에는 기꺼이 참석하고 싶었다.


처음 보는 사람 8명, 두어 번 본 사람 1명.

누군지 잘 모르지만 친한 사이라고 해야 할까. 얼굴은 못봤지만 생각과 마음을 가까이 봐온 사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으로 함께 글을 써온 글방 멤버들이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를 여러 날동안 서로의 앞에 풀어놓은 사이이다. 너의 일상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에 너도 같이 마음이 동하는 신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낯선 사이버 친구들이 무척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


이미 글을 통해 서로를 알고 지낸지는 꽤 됐지만 그래도 다 같이 모인건 처음이니 어색할 법도 한데 쭈뼛거릴 새도 없이 그냥 쑤욱 흡수되었다. 계속 나를 그 안으로 끌어안아주는 것 같았다. 이런 모임에서 보통은 어깨 하나 뒤에 앉아 조용히 듣기만 하는 편인데 여기에서는 이미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 속에 들어있었다. 그동안 함께 나눈 글과 이야기들이 서로의 마음에 어떻게 가 닿았는지는 이미 네이버 밴드 댓글로 읽어왔지만, 이 날까지도 내가 쓴 문장들을 기억해주고 그때의 감정을 나눠주는데 왈칵 고마움이 내 안에 찰랑거렸다. 서로 나를 궁금해했고 너의 이야기에 가까이 귀 기울여주었다. 함께 한 몇 시간 동안 나는 애엄마도 아니고, 슬차장도 아니고, 그냥 '내'가 된 것 같았다.


"아이가 많이 어리지요?"


글친구 C님이 나를 기억하고 나에게 주려고 가져오신 선물이었다. 순간 갑자기 감동과 감사의 마음이 어쩔 줄 모르게 차올랐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이번에도 그걸 받아 들고만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또 다른 C님이 그 선물을 훽 가져가시더니 노래를 불러주셨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쓰는 거예요. 달팽이 집을~ 말아보아요~ 어쩌고~ 저쩌고~" 노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눈을 따스이 마주하며 노래를 불러준 C님 눈만 떠오른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던 것 같다. 이 생각 하나밖에 들지 않았다.

'뭐지.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따뜻하지?'


"나 그때 슬님 글 읽고 너무 마음 아팠잖아."


내 글을 기억해주다니 너무 놀랍고 고마워서 M님의 어깨에 폭 파묻혀 울어버릴 뻔했다. 내가 불량엄마의 고뇌를 털어놓을 때마다 '나도 그래, 괜찮아'라고 토닥토닥 댓글 달아주셔서 자주 울컥했는데 실재하는 언니 옆에 있으니 더 칭얼거리고 싶었다.


평소 글을 읽으며 나와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S님(성도 같고, 심지어 생일도 같은 달)은 무심한 다정함으로 나를 끌어 산책을 가자고 하셨다. 그 손이 너무 고마워서 강아지처럼 총총 따라나섰다. S님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눈을 보고 있으니 감히 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도 알 것 같아요.'


최근 이별을 겪은 E님에게는 늘 걱정의 마음이 한켠에 있었다. 그래서 만나면 꼬옥 안아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안기고 싶을 만큼 씩씩한 모습이라 안심이 되었다. 연천에서 고양으로 돌아오는 밤길을 함께 한 R님과는 20대의 나로 돌아가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새삼 새로웠다. R님이 다가올 미래에 대해 두근두근 설렐 수 있도록 우리가 오래 그녀 곁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깊은 눈 속에서 뿜어나오는 의연한 긍정 에너지가 신기하여 닮고 싶은 K님, 그리고 B님은 앞으로가 더 궁금하고, 제대로 인사를 전하지 못한 J님에게도 따순 양말과 함께 내 마음이 잘 전해지면 좋겠다. 방문 시간대가 달라서 마주치지 못한 W님과 D님은 매일 글을 보며 이미 혼자 가까워진 터라 만나면 그냥 마냥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너의 작업실(너작)' 책방지기 T님이 있다. 다정한 T님에게는 이런 비슷한 결의 따뜻한 사람들을 모으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T님이 단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너작이 굴러가는 게 아니라 너작을 찾는 모두가 너작을 굴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이 더 놀랍다.


이런 너작의 글방 덕분에 내가 더욱 나다워졌고, 함께여서 더욱 따뜻해졌다. 다행스럽게도.

(너작 만세.)


따숩게 따숩게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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