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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an 05. 2022

마른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

평화로운 식사시간을 꿈꾸며


우리 아들은 꽤 마른 편이다.


2.51kg으로 작게 태어났고, 지금보다 더 어릴 적부터 음식에 욕심이 없었다. 일단 '먹는 것'에 흥미가 없다.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간식도 맛있다며 꼭 옆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나눠준다. 좋아하는 것이라도 특별히 더 많이 먹지 않으니 이 아이는 살이 찔 수가 없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아이가 잘 먹는 것'은 온전히 엄마로서의 내 능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모유의 질도 나의 능력치를 좌우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참젖이니 물젖이니 모유의 질에 대해서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참젖이면 아기 살이 잘 오르고, 물젖이면 영양가가 덜하다는 것) 친정엄마조차도 내가 아기였을 때 모유를 그렇게나 안 먹었다며 당신의 모유가 물젖이었던 것 같다는 자책을 지금도 하신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잘 먹지 않아 삐쩍 말랐던 나도 성인이 되어 이렇게 키도 크고, 심지어 지금은 과체중인걸!


마른 아이를 키우는 나는 때때로 따가운 시선의 끝에 서게 된다. 그들은 실제 나를 공격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 말과 시선이 다 아이 엄마에 향하는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이 든다. 아이가 통통하지 않고 말랐다는 것은 엄마가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그렇다는 인식 때문에 내가 작아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뼈다귀~ 이리 와 봐~"


명절이나 주말 모임처럼 어른들과 함께 모이는 날이면 우리 아이의 체중이 가장 쉽게 대화의 소재가 된다. 그때부터 나는 귀를 닫아야 한다. 아니지, 귀를 펑펑 더 크게 키우고 기울여서 말을 흘려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추석 명절에도 우리 아들은 뼈다귀가 되어 어른들의 이 무릎에서 저 무릎으로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도 통통한 것보다는 슬림한 것이 더 보기 좋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들의 마른 체형이 보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과체중인 우리 부부의 체형은 보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더군다나 전문가들도 뚱뚱한 아이보다 마른 아이는 건강상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리 아들을 볼 때마다 말랐다고 입을 대는 것일까.


"말랐어, 말랐어. 얘(우리 남편) 엄마처럼 따라다니면서 먹여야 해."


며칠 전 시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에 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손주를 잘 먹이고 살 찌우는 최대 임무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시부모님 뿐만 아니라 친정 부모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나의 세계를 어떤 모양으로 가꾸고 싶은지, 미래에 어떤 내가 되길 원하는지, 나는 현재 어떤 취향이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으신다. 오직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 바로 나의 안녕이자, 내 삶의 궤적이자, 일상의 성과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더 이상 먹기 싫다는 아이에게 왜 한 숟가락을 더 먹여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그렇게 싫다는데 억지로 하게 만드는 역할은 너무 괴롭다. 먹고 싶지 않을 만큼 배가 안 고픈 게 아닐까. "한 끼 굶으면 다음 끼니를 잘 먹어요."라는 내 말에 시부모님의 표정이 굳은 적이 있다. 아이 굶기는 매정한 엄마가 말실수까지 해버렸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이미 긴장한다. 나름 정성껏 밥을 차려도 아이가 제대로 먹지 않을거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운이 빠진다. 오늘의 실랑이는 얼마나 길어질까 생각만 해도 괴롭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치우겠다고 하는데도 요즘은 자꾸 더 먹겠다고 난리다. 몸을 비비 꼬면서 먹기 싫다고 이미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데 왜 또 굳이 더 먹겠다고 하는 걸까. 엄마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건 싫으니 일단 계속 먹겠다고 하나, 정말 더 먹고 싶지 않다는 그의 속마음은 이미 투명하게 다 보인다.


각자 앞에 놓인 밥과 반찬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먹는 우리 집 식사시간은, 언제까지 꿈일까.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뭘 해먹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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