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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an 12. 2022

작은 사람의 큰 용기

아기가 걷기 시작할 때


작은 사람이 태어나서 멀뚱멀뚱 누워만 있다가, 갑자기 유도 선수처럼 몸을 벌떡 뒤집고, 좀 움직이더니 어느새 기어 다니고, 어느 날에는 다 큰 사람처럼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고, 언젠가부터는 잡고 서더니 이내 하나 둘 발걸음을 떼는 모습.

두 번째 보는 건데도 참 신기하다.


DNA에 내재된 어쩔 수 없는 힘으로 본능에 따라 흘러가기도 하고, 우연처럼 어떤 동작을 만나 흥미롭게 계속 이어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기들을 옆에서 본 사람들은 안다. 저 동작들 사이사이, 저 쉼표 하나하나에 얼마나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한지, 그리고 수백 번의 연습이 얼마나 반복되는지.


아기가 태어나 두 발로 걸을 때까지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면서 아기의 무수한 실패와 성공을 만난다. 대신 해줄 수 없어 안쓰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예감한다. '난 평생 이렇게 이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다만 가까운 타인이 되는 거구나.'


안타까운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작은 사람의 성장을 목격하면서 정말 경이롭고 감동적인 순간도 참 많다.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용기의 순간'이 있는데 요즘 우리 집 딸아이에게서 그 순간이 자주 목격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작은 사람이 보여주는 나보다 더 큰 용기에 매우 벅차오른다.


생후 10개월의 우리 집 딸아이는 잡고 서서 걸음을 조금씩 떼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무언가(특히, 엄마의 어깨)를 잡은 후, 무릎을 펴서 두 발로 선 다음... 자아, 바로 이 순간이 '용기의 순간'이다! 두 발로 선 다음, 긴장된 표정을 지으면서 잡은 손을 하나, 그리고 나머지 손까지 슬며시 놓아본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순간의 용기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탐나고 부럽기까지 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쩜 그렇게 손을 놓아볼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온몸이 휘청거리는 용기를 낼까. 긴장된 표정과 앙 다문 입술이 말해준다. 그는 지금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온 마음을 다해 그 용기를 응원하며 나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이나 앞으로나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역할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그의 큰 어깨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날이 오면 조용히 다가가 말해주고 싶다. 네가 혼자 걷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냈고, 얼마나 많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는지, 목격자인 내가 그 노력을 몇 번이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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