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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an 20. 2022

눈 오는 날의 운전을 좋아한다

여행자가 되는 법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미 함박눈이 창밖에 가득이다. 오늘은 망원역에서 친구와의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다. 집 앞에 합정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그 버스를 타고 다녀오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무리해서 운전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눈 오는 날의 운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눈 오는 날의 운전은 나를 아이슬란드로 데려가 준다. 내가 떠나지 않고도 가장 생생하게 아이슬란드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바로 눈 오는 날 운전대를 잡는 순간이다. 오늘처럼 하루 종일 영하의 기온이 예상되는 날은 더 반갑다. 도로 위에 바람결 따라 눈송이가 굴러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 오는 자유로를 운전하는 동안 나는 문득 아이슬란드 1번 국도 링로드(Ring Road) 위에 있다.


강에 둥둥 떠 있는 1,000년짜리 빙하 조각들을 보고 서둘러 다음 도시로 향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삽시간에 도로 위가 눈송이로 가득 찼고 차선은커녕 도로의 모양이나 경계도 가늠할 수 없었다. 해가 점점 지고 있다. 이 와중에 지는 해는 어쩜 이미 아름다운가. 거센 바람에 눈보라가 심해져 차가 저절로 기울고 핸들도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저 멀리 앞선 자동차의 불빛에 의존하여 겨우 운전한다. 우리가 길 위에 있는 건지 구름 위에 있는 건지, 여기가 지구인지 화성인지, 점점 더 헷갈린다. 아니면 혹시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마침내 숙소에 다다랐다.


'마침내 다다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정을 무척 사랑한다. '마침내'까지의 모험과 '다다랐다'에서의 안도감을 항상 동경한다. 비록 매일 가까이 보는 길을 운전한 것뿐이지만 눈 덮인 자유로의 낯선 모습은 나를 여행자로 만들었다. 덜컹거리며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볼 때마다, 계속해서 여정을 이어가고 싶다. 그래서 마침내 다다르는, 여행자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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