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남편이 미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내 마음에 거슬린다. 좋은 일인데 마냥 좋지만은 않고, 숨긴 것은 없는데 왠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 잘못된 것이 맞는가. 그렇다고 제대로 된 것은 맞는가.
일단, 글방 친구들에게는 지난 내 생일에 남편이 선물해준 연필깎이가 남편의 이미지 형성에 한몫한 것 같다. 아내가 계속해서 쓰고 그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연필깎이를 선물해준 남편 이야기는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신기할 수 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왜 연필깎이 하나에 (내 경제관념에서 다소) 큰돈을 쓴 것에 대하여 조금 반발했다. 그러자 남편은 '연필깎이 하나'가 아니라 '아내의 생일선물'에 돈을 쓴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마음만은 충분히 고마워하기로 했다.
내 친구들에게는 어떤가. 우리 남편은 그 또래의 남자들과 조금 다른 피터팬의 이미지로 포지셔닝 되어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삶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자이지만 삶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니 남들이 봤을 때는 좋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같이 사는 내가 피터팬이 아닌걸.
남편의 이 긍정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많다. 가끔은 너무 어이없이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낙천주의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어이없었던 때는 바로 우리 가족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쳤을 때였다. 그날 아침부터 내 목이 간질간질했다. 분명 이건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평소 몸이 아파도 좀처럼 병원에 가거나 약을 잘 먹지 않는 내가 코로나 자가키트를 해보겠다고 한 것은 그만한 통증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남편은 매우 단호했다. "쟈기가 코로나에 걸렸을 리가 없어."
응? 저렇게까지 단호할 수 있을까 신기해하며 손수 내 코를 찔러 자가키트 검사를 실시했다. 너무 깊게 찔러 재채기를 하자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깔깔 웃었다. 이게 웃을 일인가. 아무튼 자기키트 시약선은 한 줄만 선명했기에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남편은 그것 보라며 또 깔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어서 병원에 가 신속항원검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 후, 햇빛에 비춰본 자가키트에 희미한 한 줄이 더 보였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줄이다. 임신테스트기에서도 희미한 두 줄은 양성반응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당연히 양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었다. 이 와중에도 남편의 의견은 "코로나 아니야."였다. 이쯤 되니 긍정적인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판단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니겠지만 신속항원검사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 해보자는 식으로 말했다. 그 길로 온 가족이 다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나는 양성, 나머지 가족들은 음성이 나왔다.
5일쯤 지났을까, 갓 돌이 지난 막내딸에게 코로나 증상이 보였다. 열이 나고 콧물이 났다. 엄마인 내가 코로나 확진자이므로 모든 정황상 딸아이도 높은 확률로 코로나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긍정왕 우리 남편의 반응은 "그냥 감기일 거야."였다. 응? 이렇게까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거야?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바로 자가키트 검사를 해보니 기다릴 것도 없이 아예 바로 두 줄을 그리며 검사창이 물들어갔다. 너무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 남편에게는 끝까지 당연하지 않다니 너무 신기했다.
남편에게는 이처럼 틀림없이 긍정적인 성향이 있다. 하지만 마냥 '긍정적인 사람이다'라고만 판단할 수 없는 여러 모습도 있다. 긍정왕이라고 하기에 그는 사회에 불만이 많고, 본인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우호적인 편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내 주위 사람들에게는 미화되어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봤고 어렴풋이 한 결론에 다다랐다.
남편은 나에게만큼은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털어놓았더니 이 세상에 단 한 명, 나에게만은 그렇게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이해할 것이며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워낙 비관적인 성향이어서 이 남자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런 마음을 먹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불안해하며 동동거릴 나를 안심시키려고 남편도 모르는 사이 긍정왕 기질이 비정상적으로 발현되는건가. 고맙기도 했지만 이런 나를 만나 그가 대책 없는 피터팬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우리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이런 나를 만나' 레퍼토리..)
내가 남편을 따라 좀 더 삶을 낙관하게 된다면 우리 둘의 성향은 건강하게 수렴되어 한 균형점에 다다를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이 내 인생의 퍼즐 조각 중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