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가 썩은 마음을 뽑아내는 방법
어떤 일은 다음으로 미뤄도 아무 해가 없어. 그렇지만 그게 바오밥나무라면 반드시 큰일이 나. 어떤 게으름뱅이가 사는 별이 하나 있었어. 작은 나무 셋을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게으른 행성의 주인은 항상 바오밥나무를 조심해야 한다. 바오밥나무는 일찍 손 쓰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자라나 행성 전체를 뒤덮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원래 어떤 행성이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고 만다. 자신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 영영 잊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슬픈 일이다.
가만히 앉아 <어린왕자>를 읽던 나는, 뜬금없게도 바오밥나무가 너무나도 만나고 싶어졌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 안에 어떤 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바오밥나무라면, 녀석이 단번에 알아볼 것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그 길로 곧장 바오밥나무가 산다는 식물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 새들이 쉬어가는 습지를 지나자 널따란 봄의 호수가 넉넉한 모습을 드러냈다. 반짝이는 물결 따라 오리들이 무리 지어 떠다니고, 호숫가의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식물원 건물로 가까이 다가갔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온실은 마치 우주의 행성 같기도, 시간을 초월한 다른 세상 같기도 했다.
서둘러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따스한 공기와 촉촉한 풀의 향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신선한 공기를 몸 안에 가득 채우며 한참을 걸었더니 어느새 조급했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온실 안 곳곳에는 낯익은 식물들도 많고, 난생처음 보는 특이한 식물들도 많았다. 열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보리수나무, 지중해에서 산다는 야자나무들, 열매는 즐겨 먹지만 실체를 본 적이 없는 올리브 나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온실의 끝자락에서, 드디어 바오밥나무와 마주하게 되었다. 굵은 줄기와 거대한 키로 눈길을 끄는 바오밥나무는 신비로운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어른왕자의 말처럼 나쁜 나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보단 알 수 없는 신성한 분위기가 나무를 살며시 감싸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바오밥나무 앞에 가만히 서서, 마음속으로 나의 씨앗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에게는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니?"
"혹시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자라고 말았어?"
착한 바오밥나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지만, 어차피 난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무시하고 방치해서 커질 대로 커져버린 나의 나무들을, 좋지 않은 습관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나의 열매들을, 그러니까 지금 나의 모습을.
바오밥나무 앞에 서면 애써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힘을 얻어 내 안에서 흉물스럽게 커져버린 자아를 뿌리째 뽑아내고 싶었다. 못된 나무인 줄 알면서도 왜 그대로 놔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난 아마 악질 중의 악질 게으름뱅이 주인일 것이다.
어린 왕자가 사는 행성에는, 다른 행성도 그렇겠지만, 착한 식물과 못된 식물이 있다. 따라서 착한 식물에서 나온 착한 씨앗이 있을 것이고, 못된 식물에서 나온 못된 씨앗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씨앗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씨앗은 땅 속에 숨어 잠을 잔다. 그러다 깨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수줍게 기지개를 켜고 태양을 향해 해맑은 싹을 쏘옥 내밀 것이다. 그게 무나 장미의 싹이라면 마음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면 된다. 하지만 못된 식물의 싹이라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즉시 뽑아버려야 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어린왕자』
이미 나의 모든 것을 뒤덮어버렸다고 해도 용기를 내어 뽑아볼 생각이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왔으니, 어쩌면 나무도 세월을 함께 뿌리가 썩어 쉽게 뽑힐지도 모를 일이다.
알면서도 침묵해 준 바오밥나무에게 감사하며, 나는 식물원 밖의 세상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