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셸리 소설 《프랑켄슈타인》 서평

내 안의 괴물은 어떻게 창조되는가?

by 바울리


과학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추악한 사실로 아름다운 가설을 죽이는 것이다. - 토마스 헉슬리


과학자는 언제나 새로 이론에 이끌린다. 기에 창의성과 논리성을 가미하면 매력적인 가설이 하나 완성되는데, 검증에 성공한다면 성취감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붙여 명성까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험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참담한 결과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만약 세상을 뒤흔들 만큼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 비밀이 부와 명예를 안겨줄 수 있다면, 그런데 실행될 경우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예상할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그 원대한 가능성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대지성 /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 오수원 옮김



SF 소설의 시작, 《프랑켄슈타인》


1818년에 발표된 메리 셸리의 소설『프랑켄슈타인』 은 SF라는 장르의 문을 연 최초의 소설로 인정받고 있다. 과학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종종 있었지만, 과학 이론을 본격적인 주제로 삼은 경우는 이 소설이 처음이이다. 19세 소녀가 쓴 괴물 이야기는 이후 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당시 나는 친구들과 맹렬히 타오르는 난롯가에 저녁마다 둘러앉아 우연히 알게 된 독일의 귀신 이야기들을 재미 삼아 주고받았다.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다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두 명의 친구와 나는 초자연적 사건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써보자고 약속했다. (서문 中)


이 소설은 무서운 괴담을 써보자는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제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당대 문학계를 선도했던 퍼시 셸리(훗날의 남편)와, 바이런 경, 『뱀파이어』 의 저자인 의사 폴리도리, 그리고 의붓 자매 클레어몬트가 함께했다.





거대한 비극을 탄생시키다


『프랑켄슈타인』 은 실험실에서 탄생된 괴물로 인해 일어나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제(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암시처럼 과학의 발전으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괴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과학에 대한 경고, 소외와 배척에 대한 저항,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젊은 탐험가 월턴은 북극으로 항해하던 도중 빙하에 갇힌 한 조난자를 구출한다. 거의 반쯤 죽어가던 조난자는 월턴의 도움으로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자신의 이름이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임을 밝힌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경이로운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 출신의 젊은 과학자로 우연히 생명창조의 비밀을 밝혀내 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는 밤을 지새우며 시체들을 조합하고 열정적으로 실험한 끝에 창조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거대하고 일그러진 피조물의 형상에 겁을 먹고 실험실을 뛰쳐나와 멀리 도망가버린다.


한편, 이름도 없는 피조물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한 가정집의 창고에 몸을 숨긴다. 피조물은 한 가정의 일상생활을 몰래 엿보며 언어를 습득하고 사회적, 문화적 소양을 키워 나간다. 때로는 사람들을 몰래 도우며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고도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저주스러운 창조자!
어째서 당신조차 역겨워 등을 돌릴 만큼
흉악한 괴물을 빚었습니까?


하지만 피조물은 끔찍한 외모로 인해 심한 차별을 받는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편견의 날을 세워 혐오하고 배척한 탓에 홀로 고립되어 죄악에 빠져들게 된다.


인간에 깊은 분노를 느낀 피조물은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크게 한탄하고 자신의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처럼 흉측한 반려자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괴물의 창조를 거절한다. 이에 분노한 피조물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창조주를 향해 끔찍한 파멸을 예고한다.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의 가족과 친구, 약혼녀까지 차례차례 죽여버리고 멀리 도망친다. 피조물은 이제 진정한 괴물이 되고 말았다.


괴물을 향한 복수심에 가득 찬 프랑켄슈타인은 유럽 전역을 떠돌며 괴물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마침내 괴물의 서식처인 북극 바다까지 당도했지만 눈앞에서 놓치고 얼어붙은 바다 한복판에 쓰러지고 마는데, 마침 항해 중이던 탐험가 월턴을 만나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끝내 괴물에게 복수하지 못한 채 선실에서 사망한다. 뒤이어 프랑켄슈타인을 따라 선실 안으로 들어온 괴물은 창조주의 죽음을 목격하고 크게 절규한다. 망연자실한 괴물은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깊이 후회했다. 그러더니 곧 괴물은 월턴에게 스스로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남기며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열광하는 독자 vs 무시하는 평론가


이 소설은 출간 당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반면 평론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공포 소설의 문학적 가치가 워낙 낮게 평가되던 시기였기도 하고, 죽은 시체를 조합해서 되살린다는 반사회적 설정이 평론가들에게 반감을 사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린 소녀라는 것이 밝혀지자 “병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기이한 산물”이라는 악평까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에 유행하던 공포 소설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평가이다. 다른 공포소설과는 다르게 괴물을 절대악이 아닌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일으키는 인물로 그려내며 선과 악을 입체감 있게 담아낸 것도 특징이다. 피조물을 비참하게 방치한 프랑켄슈타인의 죄가 훨씬 크게 와닿는다.


더불어 지식층이 외면하던 과학발전의 명암과 함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도덕적 성찰까지 의미 있게 담아내었다. 이 소설이 일부 지식층의 반감을 샀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19세의 천재 소녀, 메리 셸리


그런데 방년 19세의 소녀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단지 10대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치부하기엔 내용이 심오하고 복잡하다. 소설에 담긴 의미들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유년시절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메리 셸리는 또래의 여성들에 비해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여성 권리 작가인 메리의 어머니는 그녀가 태어난 지 단 2주 만에 사망했고, 계모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18세가 되던 해에는 자신의 연인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이 사건으로 메리는 온갖 비난과 경멸을 한 몸에 받는 신세로 전락한다. 분노한 아버지로부터 모든 학술, 재정적인 지원도 끊겨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낳은 딸은 불과 11일 만에 사망한다. 이듬해 남편(애인)의 진짜 부인이 강에 투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영국으로 돌아와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와 결혼한다.


소설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감정의 대립은, 아마도 10대 소녀 메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소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작가 메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문장들을 종종 찾을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장면이나 멸시받는 괴물이 분노하는 장면은 메리가 현재 겪고 있는, 또는 현재까지 살면서 겪어 온 감정들과도 중첩된다. 프랑켄슈타인이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꾸는 장면은 메리가 느끼는 심정과 동일했을 것이다. 흐르는 정념에게 운명을 장악당했다는 구절은 마치 금지된 사랑을 선택한 작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나중에 내 운명을 장악한 그 정념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스스로 설명하다 보니, 그 정념은 마치 산을 흐르는 냇물처럼, 조악하면서도 거의 잊힌 원천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억도 나지 않는 수원지에서 흘러나온 냇물은 점차 센물살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온갖 희망과 기쁨을 휩쓸어가 버렸습니다. 42p


첫 입맞춤을 하는 순간 그녀의 입술이 검푸른 죽음의 빛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변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내 품 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안겨있는 겁니다. 시신을 감싼 수의의 주름사이로 무덤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공포에 질려 꿈에서 깨어났어요. 67p


하지만 소설에서 내가 주로 다룬 것은 오늘날의 소설에 팽배한 무기력함을 피하고, 따스한 가정에서 맛보는 애정과 보편적 미덕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 정도다. 주인공의 성격과 그가 처한 상황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여러 의견에 관해서는 저자도 그렇게 확신한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10p



메리가 젊은 시절을 비참하게만 살아왔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아낌없는 지원 덕택에 정치, 과학, 문학적으로 뛰어난 소양을 갖춘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유부남과 멀리 도망가버리는 딸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부모가 세상에 없을 뿐이다. 고집불통 메리는 끝내 결혼을 승낙받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회복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유언


그렇다면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랑켄슈타인이 유언처럼 남기는 마지막 말이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다.


월턴!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고 야심을 피하십시오. 과학과 발견으로 명망을 얻으려는, 무고해 보이는 야심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나는 희망을 품었다가 망했어도 다른 사람들은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입니다. 284


변질된 야망에 사로잡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끝내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괴물의 또한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두 인물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 파멸시키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반면,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진짜 주인공 월턴은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선원들을 더는 희생시킬 수 없었기에 미지의 영역을 넘보던 자신의 야망을 내려놓았다. 앞선 두 인물의 여정을 목격한 독자들은 월턴이 꿈을 포기하는 장면에서 다행스러운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는 더 나은 다음 기회가 있을 테니.


이제 다 끝났어. 영국으로 돌아가고 있어. 인류의 이익이라는 희망도 영광도 다 잃었어. 내 친구도 잃었지. 그래도 이 아픈 상황을 누나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볼게. 영국으로 그리고 누나가 있는 곳으로 이렇게 둥둥 떠가고 있지만, 절망하지 않으려고 해. 281p



소설의 초고를 완성한 작가 메리 셸리도 영국으로 돌아갔다.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그녀는 마치 월턴과 같은 심정으로 바다 위를 둥둥 떠가고 있겠지만, 남편이 될 연인과 함께 돌아가는 것이니 절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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