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인사만 했을 뿐인데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오늘로써 딱 1년이 되었다. 이사 오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기록적인 폭우로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고생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양이들도 3개월 정도는 힘들어했고, 우리들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주변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이삿짐을 대충 옮겨놓고 나서는 여기저기 인테리어 공사를 하느라 3~4개월이 거짓말처럼 훅 지나갔다.
봉지 봉지들이
우리 집 대문 문고리에 주렁주렁 걸려 있고
그 봉지 안에는 농사지은 농작물이 담겨 있었다.
외출하러 나가는 길에 "혹시 저희 집 앞에 이거 놓고 가셨어요?" 라며 사진을 보여드리면
"새댁네 먹으라고 놓고 갔어"라고 하신다.
나는 40대 중반이고, 결혼한 지도 꽤 되어서 "새댁"이라는 소리가 너무나 어색하고 낯간지러운데
이 동네 분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나를 "새댁"이라 부른다.
"그냥 편하게 제 이름 불러주세요"라고 말해도 알겠다고 해 놓고선 그다음부터 나를 보면
또 계속 "새댁~ 새댁~"으로 부른다.
자꾸만 이렇게 너무 주시면,
너무 감사한데 저는 해드릴 것이 별로 없어 항상 너무 죄송하잖아요.
맨날 어떻게 받기만 해요, 괜찮으니 안 주셔도 되어요
"음식은 나눠먹는 거야,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마,
하는 김에 많이 해서 있을 때 같이 먹으면 좋지"
동네 이웃분들은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느 날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무심코 나온 말.
"엄마 여기 동네 사람들이 이상해, 자꾸만 먹을 것을 가져다줘. 처음엔 고마웠는데 맨날 받기만 하니까 나도 뭔가를 줘야 하나 부담도 생기고 그래"
"참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만날 때마다 어르신들께 인사 잘하고~"
엄마는 이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겠지?
그래, 사실 원래 사람들에겐 모두 따뜻함이 있다.
다만 다들 너무 바쁘고 쫓기듯 살다 보니 이웃을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일 뿐이다.
따뜻함을 감추고 살아갈 뿐이다.
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오셨다며 마카다미아와 땅콩을 챙겨주신다.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이 동네 어르신들 이상하지 않아?
왜 자꾸만 우리에게 이런 거 주시는 걸까?
우리는 뭐 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말이야
남편은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라고만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나? 반문하게 된다.
내가 동네 분들에게 해드린 것이라고는 눈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넨 것 밖에는 없다. 그 인사가 동네 어르신들께 행복이 되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인사는 늘 열심히 한다. 인사의 대가인 것일까? 인사 덕분에 우리 집은 늘 먹을 것들이 풍족해지고 있다.
마트에서 사 먹는 고추장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챙겨주는 마음은 순수하게 감사히 받아들이자. 그분들이 나에게 뭔가 거창한 것을 바라고 이렇게 챙겨주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하는 내 모습이 어르신들 눈에는 보기 좋았나 보다.
복 중의 복은 인연복이라고 했던가?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도 뭐 챙겨다 드릴 것이 있으면 챙겨 드리자.
마음에서 마음으로. 음식을 통해 따뜻함이 가득 전해져 온다.
유용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
이웃에게 내가 먼저 건네는 밝은 인사.
인사는 생각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