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한 호박
"새댁~ 아니 왜 호박을 안따는 거야? 빨리 따야지~"
동네 이웃분들은 나를 아직도 새댁이라고 부른다.
나를 보자마자 동네 어르신이 호박을 빨리 따라고 말씀해 주신다.
냉장고 야채칸에 이미 먼저 수확해 둔 호박이 가득 있어서
급하게 호박을 또 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나는
"네? 왜요? 저는 좀 더 크게 키워보려고 일부러 그냥 둔 건데요?"라고 말하자
어르신은 깔깔깔깔 박장대소하시며
"너무 커버리면 맛이 없어, 버려야 해~
씨 생기고 맛이 없어져서 못 먹어~ 적당할 때 바로바로 따서 먹어야 맛있어"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호박이 크면 클수록 좋은 줄 알았다.
호박이 넝쿨 속에 자리 잡고
날마다, 볼 때마다 크기가 점점 펌핑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렇게 흐뭇하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내 자식이 키가 매일 무럭무럭 자라는 걸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커다란 호박 사진을 찍어
내가 지금 이렇게 텃밭을 잘 가꾸고 있다고
친언니들에게 카톡을 보내 자랑하기도 했었다.
커다란 호박이 마치 나의 자랑인 듯 사진을 찍어 친언니들에게 마구 자랑을 했었는데
맛없어져서 못 먹는 호박이 되어 버렸다니, 초보 농사꾼은 오늘 큰 것을 하나 배웠다.
모든 건 제 때 제 때 빨리 따줘야 한다는 것.
제 때 수확하지 않으면 맛도 없어질뿐더러, 다른 열매도 잘 맺히지 않고, 크지 않는다는 어르신의 가르침은 오늘의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왜 나는 보이는 크기에만 집착하고 있었을까?
농작물의 크기가 일단 크면
다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를 발견하고는 웃음이 났다.
그리고 크기에 집착하고 있었던 나를 반성했다.
진짜 농작물의 본질은 바로 "맛"인데
나는 그 본질을 망각하고 겉으로 보이는 "크기"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텃밭의 농작물이 크게 자라면, 마치 내가 농사를 굉장히 잘 짓는 사람이라는 착각이 일어나기 쉽다.
호박 넝쿨 옆을 보니
오이도 따야 할 타이밍을 이미 놓쳐서 과도하게 커져버린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이도 너무 커져버리면 안에 씨가 생겨서 오이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오이들이 더 많이 자라나지 못한다고 한다.
동네 이웃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으면
나는 아마 호박뿐만 아니라 오이도 한 없이 그렇게 오래오래 매달어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크기가 얼마나 더 커졌나에 집착하면서 말이다.
텃밭을 하면서 인생을 배운다.
농작물의 본질인 '맛'보다 '크게'에 집착했던 나를 반성한다.
무언가를 할 때 그 행위에 대한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다시 되새겨본다.
뭐든지 제때 수확해야 하는 타이밍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그때 그때 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잘못한 사람에게 해야 하는 "사과"는
적절한 제 때의 타이밍이 참 중요하다.
제때 바로 사과하지 못하고 뭉그적 거리다가 타이밍이 너무 늦어버린 사과는
맛 없어져버린 호박과 오이처럼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니 뭐든 생각났을 때, 바로바로 제 때 하는 것이 좋다.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수확이 늦어버린 호박은
씨가 꽉 들어차서 결국 먹지를 못하게 된다.
유용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
"타이밍 잘 지키기"
뭐든지 제 때 해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
그 타이밍이 지나면 환영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