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무대 지금의 노래]_티키틱
꿈을 포기했을 때 겪게 되는 몇 가지 증상이 있다.
슬픔과 아쉬움으로 시작되는, 너무도 예상 가능한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미련을 감추기 위해 뇌가 스스로 속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한 모습이다. '그래, 영화는 눈으로 보라고 있는 거야, 직접 출연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소리를 하면서 정신 승리를 시도하지만, 자꾸만 튀어나오는 미련 때문에 막상 눈으로 보는 일조차 멀리하게 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길 안에서 그 꿈의 조각을 찾아내려 한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택배 상하차와 에어컨 실외기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이었다. '여기서의 경험을 토대로 영감을 받아서 언젠가 연기에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미련이 없다면 당연히 기약 또한 없었어야 할 그 '언젠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꿈을 포기하면서, 나의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이런 선택을 했다. 연기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신에 영상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기로 말이다. '연기자 따위나 꿈꾸는 딴따라들, 내 안정적인 월급을 보고 배나 실컷 아프라지!' 같은 삐뚤어진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월급은 그다지 안정적인 편이 아니었으며 나는 중간중간 Project SH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콜!'하고 기꺼이 출연했다. 꿈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감정은 이토록 변화무쌍하다.
인터넷 광고를 연출하고 편집하는 일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다만 단 한 가지 단점은 내가 꿈꾸던 그 일을 어떻게든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뇌는 미련을 감출지 말지 갈피를 못 잡기 시작했다. 내가 연출을 맡은 광고에서 제작비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때면 자발적으로 엑스트라를 자처했는데, 크게 넘어지거나 케이크에 얼굴을 파묻는 뒷모습을 대타로 촬영할 때면 '출연료가 많이 드는 장면을 내가 공짜로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한때나마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내 꿈을 제일 먼저 나서서 짓밟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중략)
신혁이의 제안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마음속에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크게 자리 잡았음을 느꼈다. 아무리 힘든 촬영을 하고 밤새 편집을 해도 마냥 기쁘고 즐거운 나날이었으며, 누구를 만나든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우리 팀을 자랑하고 싶어 죽겠는 나날들이었다. 사실상 축하파티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첫 영상이 올라온 이후 전화를 걸어준 이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축하파티가 따로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