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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Apr 07. 2021

오늘따라 노을이 더 예쁜 이유가 뭔지 알아?

[아몬드]_손원평

@jinifoto
오늘따라 노을이 더 예쁜 이유는 무엇일까?



시적인 답변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오늘따라 노을이 더 붉고 예쁜 이유는 미세먼지가 많기 때문이다.


어떠한 아름다운 현상에,

마냥 아름다운 것은 있지는 않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게 봄을 수놓는 봄꽃들은 그만큼 연약해서,

봄비와 함께 사라진다.


모든 꽃들의 시샘을 사는 화려한 꽃들은

벌레에 시달리고,

사람들에게 시달린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도대체,

희극은 무엇이고 비극은 무엇일까.

행복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누구도 완벽하게 재단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책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아이가 나온다.

윤재와 곤이.


[윤재]

윤재의 아버지는 윤재가 태어나기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지금은 어머니, 외할머니와 함께

셋이서 헌책방을 간신히 운영하며 산다.


윤재는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게 태어났다.

윤재의 뇌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알렉시티미아. 사이코패스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것이다.

화남, 슬픔, 놀람, 두려움 등의 감정을 윤재는 잘 알지 못한다.


윤재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언제나 윤재의 양 손을 잡고 놔주지 않았고,

정상적인 아이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감정 반응을 암기시킨다.

누군가 맛있는 음식을 준다면 느껴야 할 감정은?

기쁨과 감사.

누군가 아프게 한다면 느껴야 할 감정은?

분노.

누군가 '잘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고마워'라고 할 것,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윤재


16살 크리스마스이브, 윤재의 생일이었다.

윤재의 눈 앞에서 할머니는 도끼로 살해당했고,

어머니는 그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한 남자의 충동적인 행동이었고,

'사고'였다.

그 남자는 그 '사고'를 저지른 이후, 현장에서 자결했다.  


남자가 엄마의 머리 위로 망치를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엄마가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나동그라졌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밀었지만 할멈이 소리를 지르며 몸으로 막아섰다. 남자는 망치를 땅에 떨구곤 다른 손에 쥔 칼로 공기를 몇 차례 벴다. 나는 유리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할멈은 고개를 저으며 온 힘을 다해 문을 막았다. 할멈은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내게 무언가를 반복해 말했다.
그러는 동안 할멈의 뒤로 남자가 다가왔다. 뒤를 돌아 남자를 본 할멈이 커다랗게 포효했다. 하지만 단 한 번 뿐이었다. 할멈의 거대한 등이 내 눈앞을 가렸다.

유리에 피가 튀었다.

빨갛게. 더 빨갛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점점 더 빨개지는 유리문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저 멀리 얼어 있는 전경들이 보였다.

마치 남자와 엄마와 할멈이 한 편의 연극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듯
모두들 꼼짝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가 관객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윤재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곤이]

곤이는 부유하고 안정된 집에서 태어났다.

원래 곤이의 부모님이 지어준 그의 이름은 '이수'다.

어머니는 잘 나가는 기자였고,

아버지는 명성 있는 교수였다.

두 부부는 각자의 성공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곤이를 위해 시간 내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모처럼 휴가를 낸 어느 날,

어머니는 어린 곤이를 데리고 놀이동산을 갔다.

잠시 걸려 온 전화를 받는 사이,

곤이가 사라졌다.


사라진 곤이는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불법체류 중인 중국인 노부부의 손에 몇 년간 키워졌다.

그곳에서 곤이는 '쩌양'이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함께한 몇 년간 곤이는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검문을 나오면서 노부부는 자취를 감췄다. 곤이는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가 아동 보호 시설로 갔다.


얼마 뒤 평범한 집에 입양된 그는 '동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하지만 2년 뒤, 그 집에 아이가 생기고, 곤이는 파양 된다.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곤이


그 뒤로 곤이는 다시 시설로 돌아갔고,

소년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곤이'라는 이름은 그때 스스로 지은 이름이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친아버지를 만났다.



[심 박사: 윤재 보호자]


헌책방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친구라고 한다.

혼자가 된 윤재의 보호자를 자처했고, 윤재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답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실 답변할 수 없는 질문들도 많으니.


그러나 들어준다.

마치 할머니와 어머니가 윤재에게 그랬던 것처럼.


생각해보면,

'들어줌'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어느 날 심 박사에게 윤재는 감정적인 곤이를 생각하며,

문득 '몰랐던 감정'들을 더 배우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러자 심 박사가 대답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 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 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심 박사


(사실 그렇다.

 때로는 내가 눈치 채지 않았더라면,

내가 느끼지 못했더라면....하각할 때 있다.)


[윤 교수: 곤이의 친아버지]

바르게 자랐고, 남부럽지 않은 명예와 재물을 얻었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아이를 잃어버리고 나서 부부는 급격하게 불행을 겪는다. 아내는 불치병에 걸리고 죽기 전에라도 아이를 보기 원한다.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다행히도 아내가 죽기 전에 아이를 찾는다. 하지만 두 부부가 상상하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다.

폭력과는 거리가 먼 채 바르고 모범생적으로만 살아왔던 두 부부였다.

그런데 곤이의 모습은...

이런 아들의 모습은 아내에게 보일 수 없다.


그래서 윤 교수는 대행을 세우기로 한다.

그게 바로 윤재다.


아내는 숨이 다하기 전에 윤재를 안으며

'이수야...'라고 울먹이고, 숨을 거둔다.


장례식 당일에도 윤재는 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곤이도 왔다.


어찌 됐든 윤 교수와 곤이는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하필 곤이와 윤재는 올해 같은 반이다.



"너랑 나, 누가 더 불행한 걸까.
엄마가 있다가 없어지는 거랑,
애초에 기억에도 없던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어버리는 것 중에서."
-곤이

곤이가 윤재에게 묻는다.

하지만 윤재는 답하지 못한다.


타고나기를 무감각하게 태어났으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서 엇나가지 않은 윤재.

이제 윤재는 감정을 조금 더 배우고 싶어 한다.


감정적인 성격으로 태어난 곤이.

누구보다 십 대의 삶이 거칠어서,

부정적인 감정이 유난히 발달해 버린 곤이.

곤이의 겉모습만 보고는 사람들은 한 번에 판단해버린다.

'비행소년..'


'내가 그동안 널 왜 찾아간 줄 알아?' -곤이
'아니'-윤재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 하나는, 적어도 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날 쉽게 판단하지 않더라고,
네 별난 머리 덕에. 그 별난 머리 때문에 나비니 뭐니 뻘짓만 했지만...' -곤이


같은 피만 흐르면 가족일까.

십여 년 만에 만난 윤 교수는 곤이를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어느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가족으로 산다는 것에 혈연 따위는 상관없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슬픔과 연약함을 서로 뒷받침해주고, 인생이라는 이름의 길을 서로 손 잡고 걷고 싶다고 바라는 것.
그 마음이 가족이라는 인연의 끈을
강하게 엮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 남자는 말이야...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중략) -곤이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난 아들이 아냐. 잘못 찾아온 잡동 사니지.
그래서 그 여자 죽기 전에 얼굴도 못 본 거고...'-곤이


윤 교수가 곤이를 처음 만나자마자 한 일은, 곤이를 강남의 학교로 전학시킨 일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윤 교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때린다.

십여 년만에 만난 그의 아들이다.


학교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나고, 증거들이 곤이를 가리키자, 윤 교수는 곤이에게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은 채

학교에 돈을 가져다주고, 사과한다.

이 사건은 곤이와 윤 교수를 완전히 갈라서게 만든다.


"차라리 말이야, 내가 더 나쁜 짓을 저질러 버릴까?
어쩌면 다들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곤이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P.J. 놀란(책 중 가상인물)


책에는 위와 같은 말이 나온다.

인상적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진심과 사랑이면,

구할 수 없는 인간은 없다.


중간에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책을 덮기 전, '작가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대로 동시대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다르게 길을 걸어간다.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는 사람이 된다.

또 어떤 이는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드물지만.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4부의 마지막에서 윤재는 이런 말을 한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심 박사를 찾아간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폭격에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 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다. 화면을 보고 있는 심 박사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시선은 미소 띤 박사의 얼굴 뒤로 떠오른 소년에게 향해 있었다. 나 같은 천치도 안다. 그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
비슷한 모습을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널을 무심히 돌리던 엄마나 할멈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 일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 기세가 너무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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