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_손원평
오늘따라 노을이 더 예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윤재
남자가 엄마의 머리 위로 망치를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엄마가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나동그라졌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밀었지만 할멈이 소리를 지르며 몸으로 막아섰다. 남자는 망치를 땅에 떨구곤 다른 손에 쥔 칼로 공기를 몇 차례 벴다. 나는 유리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할멈은 고개를 저으며 온 힘을 다해 문을 막았다. 할멈은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내게 무언가를 반복해 말했다.
그러는 동안 할멈의 뒤로 남자가 다가왔다. 뒤를 돌아 남자를 본 할멈이 커다랗게 포효했다. 하지만 단 한 번 뿐이었다. 할멈의 거대한 등이 내 눈앞을 가렸다.
유리에 피가 튀었다.
빨갛게. 더 빨갛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점점 더 빨개지는 유리문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저 멀리 얼어 있는 전경들이 보였다.
마치 남자와 엄마와 할멈이 한 편의 연극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듯
모두들 꼼짝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가 관객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곤이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 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 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심 박사
"너랑 나, 누가 더 불행한 걸까.
엄마가 있다가 없어지는 거랑,
애초에 기억에도 없던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어버리는 것 중에서."
-곤이
'내가 그동안 널 왜 찾아간 줄 알아?' -곤이
'아니'-윤재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 하나는, 적어도 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날 쉽게 판단하지 않더라고,
네 별난 머리 덕에. 그 별난 머리 때문에 나비니 뭐니 뻘짓만 했지만...' -곤이
'가족으로 산다는 것에 혈연 따위는 상관없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슬픔과 연약함을 서로 뒷받침해주고, 인생이라는 이름의 길을 서로 손 잡고 걷고 싶다고 바라는 것.
그 마음이 가족이라는 인연의 끈을
강하게 엮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 남자는 말이야...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중략) -곤이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난 아들이 아냐. 잘못 찾아온 잡동 사니지.
그래서 그 여자 죽기 전에 얼굴도 못 본 거고...'-곤이
"차라리 말이야, 내가 더 나쁜 짓을 저질러 버릴까?
어쩌면 다들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곤이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심 박사를 찾아간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폭격에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 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다. 화면을 보고 있는 심 박사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시선은 미소 띤 박사의 얼굴 뒤로 떠오른 소년에게 향해 있었다. 나 같은 천치도 안다. 그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
비슷한 모습을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널을 무심히 돌리던 엄마나 할멈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 일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 기세가 너무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윤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