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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Apr 19. 2021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 알랭 드 보통

1. 제목


영국에서는 'Essays in love'

미국에서는 'On love'

한국에서는 1995년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었,

현재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발행되었다.


완독 한 뒤에 서평을 쓰며 생각해 볼 때,

 제목은 차라리 '로맨스'가 더 알맞으며,

번역 전인 원제가 스토리와 더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면 흔히 겪었을 것이고 알고 있을 그러한 평범한 사랑을 묘사하며, 그 속에서 번뇌하고 고뇌하는 남 주인공의 철학적 서사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우연적 만남에 대해 운명은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있고,

호감을 가진 이성을 자신의 이상형에 맞춰 넣어보며,

일어난 이별에 대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시도 혹은 그에 상응하는 괴로움에 다다라봤던 이들에게 모두 추천한다.


주인공의 철학적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터이다.



2. 줄거리


한 남자와 여자가 비행기 옆자리 좌석에 앉았고,

사랑에 빠졌다.

우연을 운명으로 여기면서.


서로를 각자의 이상형에 맞춰 넣으며,

이러한 만남에 대해 감탄한다.


시간이 지나, 그들 관계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온다.

실망을 하고, 일방적으로 사랑이 식기 시작한다.


기념일이었던 어느 날, 여행을 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 선언을 한다.


남자는 매우 힘들어하고 자살기도를 하지만 실패한다.

그의 집 모든 구석에서 그녀의 흔적이 보이기에, 장소를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기억이 줄어들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란다. 그는 새로운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지난번의 시작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한다.



3. 책 속 문구


사랑하는 여자를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머릿속에서 작곡한 놀라운 심포니를 나중에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리로 들었을 때의 느낌과 같다. 우리의 생각 가운데 많은 부분이 연주를 통해서 확인되는 것에 감명을 받기는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연주되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다.

바이올린 연주자 가운데 하나의 음정이 틀린 것이 아닌가?
플루트가 약간 늦게 들어온 것 아닌가?
타악기 소리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우리가 첫눈에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구두나 문학에 관한 취향의 충돌로부터 자유롭다. 연주되지 않은 심포니가 음정이 틀린 바이올린이나 늦게 들어오는 플루트로부터 자유로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공상이 실제 연주되는 순간, 의식 속을 떠다니던 천사 같은 존재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자기 나름의 정신적이고 육체적 역사를 가진 물질적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해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그녀를 만나며 처음의 단편적인 조각들에서 사랑을 느낀다. 점차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단편적이었던 조각들은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진다. 이때부터 차츰, '이 부분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하는 중얼거림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를 갈망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해 내부의 완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똑같은 요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태의 핵심에 그 요구가 놓여 있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 매우 온전해 보이고 - 육체적으로 온전하고 감정적으로 "통합되어"보이고 -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우리 내부에 부족한 데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지만, 상대에게서도 비슷하게 부족한 데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답을 찾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자신의 문제의 복사본만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몰아치던 폭풍이 절정에 이르러 클로이가 그 불쾌한 구두 한 짝을 벗었다. 나더러 보라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니 그것으로 나를 죽이려는 것 같아 날아오는 투사체를 피해서 고개를 숙였다. 구두는 내 뒤에 유리를 깨고 밖에 거리로 날아가 쓰레기장에 이웃에 먹다 버린 치킨 마드라스에 꽂혔다.  (중략)

왜 보통 친구들에게 하듯이 예의 바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유일한 변명은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 구두만 빼면 그녀는 내 이상형이라는 것.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통 친구에게 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중략)

무슨 변명이 가능할까. 부모와 정치가들이 메스를 꺼내 들기 전에 하는 말이 있을 뿐이다. 나는 너에게 관심 있기 때문에 네 속을 뒤집어놓는다. 나는 네가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비전을 계시함으로써 너에게 영광을 주었으니 이제 너에게 상처도 주겠다.

그러나 우리는 친밀함을 일종의 소유권이나 허가장으로 여겼다.

친밀함은 소유권이나 허가장이 아닌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래 사귄 연인/부부 사이에서도 여전히 존댓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각자의 철학이 존재하며 무엇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아무리 부부/연인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의 울타리를 언제나 지켜줘야 함은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보통 소리 없는 과정임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반응을 통해서 그것을 채택하라고 암시할 뿐이다. 은밀하게 우리에게 정해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중략)

결국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늘 낙인을 찍을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늘 단순한 "나"일 뿐이며, 낙인찍힌 부분들 사이를 쉽게, 다른 사람들의 선입관이 부가하는 제한 없이 이동한다. (중략)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도 우리를 바비큐 꼬치에 꿰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다만 적합하게 꿰는 사람일 뿐이다. 대체로 우리 스스로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점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 대체로 우리가 이해받고 싶어 하는 점들에 대해서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인 것이다. 클로이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우리의 복잡성이 요구하는 대로 팽창할 만한 공간이 주어졌다는 뜻이었다.
가스 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심리학 용어 중에 '가스 라이팅'이라는 게 있다.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용어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한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


즉,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 부인 등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연인/부부관계에서 이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난다. 공개적으로 어떠한 행동/선택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반응을 통해 유도하고 암시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은밀하게 틀을 정해버리는 것.


혹시 연애 중이라면, 자신의 연애는 어떠한지 돌아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고 있을지도.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 온전히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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