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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May 11. 2021

당신의 마음이 힘들었던 이유

[당신이옳다] 정혜선

01. 그런 사람 만나본 적 없으세요?


내 이야기를 마구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반면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꺼내려다가도 주춤거리게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청취 자세, 반응 등 세심한 것들 속에서 '이 사람은 내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구나'등의 불편한 느낌이 들면, 우리는 입을 닫게 됩니다. 두 유형의 사람, 가장 큰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참 좋아하는 동생 J에게 '나.. 이런 일을 저질러버렸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J양의 답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언니가 그런 행동을 한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는 만나서 함께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사실 로제떡볶이를 먹었는데..사진은 죠스떡볶이.

'자 이제 한 번 들어볼까?'


J는 어느 정도 먹고 노는 시간을 갖다가 포문을 열어줬고,  저는 그날 결국 사연을 쏟아냈죠. J는 가만히 들어주었을 따름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언니가 무조건 옳아.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J는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게 초점을 두었던 거죠.
그래서 그만큼 힘들었던 그때 의지가 되었, 힐링이 되었습니다.

이후, 건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J양 덕분이었습니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공급이 끊기면 심리적 생명도 서서히 꺼져간다. (중략)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다음 발길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다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p.49


그저 잘 들어주는 사람이어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온전히 나를 봐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거죠.


자기 존재가 집중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p. 45-46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p. 50


02. 책에서 배우는 것


이 책은 그러한 자세,

그리고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타인에게 건강하게 공감해주는 법을요.


1) 첫째로 먼저 내 감정을 잘 알아야 하고,

나 스스로의 중심을 잘 잡는 게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내 중심이 잡혀있어야 타인도 볼 수 있으니까요.


2) 다음은 타인을 주인공으로 대하며 들어주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조언이나 평가는 아주 나중 일이라는 거죠.

나와 네가 순간순간 겨루다가 서서히 나를 지워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자기 소멸의 길로 접어들며 병이 든다. (중략)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던 사람은 절대적 의존 대상이던 그 부모나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절대적인 내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일이 없어지거나 그 가치가 빛을 잃을 때 공황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중략)

누구든 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

p. 40-41


자신을 잘 파악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아껴주며 살고 계신가요?

타인에게 공감해주겠다며

무리한 감정 노동을 하고 계시진 않나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에게 지쳐가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특히 예비 부모나 자식을 공부 중인 부모들,
교사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03. 공감자의 자격을 묻는다면..


공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을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자기 보호에 대한 민감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중략)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은 양립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 p. 192

저자는 먼저 상대방을 공감하고 들어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듣고 공감하라고 얘기합니다.


본인 스스로 안정감을 갖고 있어야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거니까요.

'나'가 또렷해져야 그다음부터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p. 105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관종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이 0이길 바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자기'를 드러내면, 그러니까 내 감정, 내 말, 내 생각을 드러내면 바로 싹이 잘리거나 내내 그림자 취급만 당하고 사는 삶은 배터리가 3퍼센트쯤 남은 방전 직전의 휴대전화와 비슷하다. p. 93

한 친구는 연인을 만날 때면 자존감이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연애 공백기를 못 버티겠다고요.


그 친구에게 연인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봐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공감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도 결국 이런 연인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04. 공감의 방법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인정과 주목을 존재에 대한 주목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먹어도 기대만큼 포만감이 없다.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공감도 없고, 오른 석차에 대한 반응도 없는 무관심보다는 낫다. 하지만 밥 없이 반찬으로만 배를 채운 사람처럼 아무리 많이 먹어도 편안한 포만감이나 포만감으로 인한 안정감이 없다. 반찬으로만 채운 배는 한계가 있다.

p. 142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기 위해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야기에 의견이나 판단을 얹기보다, 그 사람의 본질에 집중해주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칭찬할 때

"와, 성적이 그렇게 올랐구나. 참 잘했다"는 식으로 오른 점수에 방점을 찍는 칭찬보다는

"성적이 그렇게 많이 올랐구나. 네가 이번에 정말 노력을 많이 했나 보다. 참 애썼어"라고 한다면

오른 성적보다 아이의 존재 자체에 집중을 한 것이다.

p. 142
공감은 누군가의 불어난 재산, 올라간 직급, 새로 딴 학위나 상장처럼 그의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씀에 대한 반응이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인정받고 보상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
사람은 그런 외형에 덜 휘둘리며 살 수 있게 된다.

공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큼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은 그가 고요하게 가만히 있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초조하지 않을 수 있는 차돌 같은 안정감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p. 142-143

아이의 성적에 집중하거나, 상대방의 지위 혹은 재산 등에 집중해서 칭찬하고 반응해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대해 반응하고 들어주는 것. 저자는 그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05. 공감할 때 주의사항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중략)

이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이다.
그의 존재, 그의 고통에 눈을 포개고
그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그에게 물어줘야 한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중략)

자신의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결정적 요인이다.

말이 아니라 내 고통을 공감하는 존재가 치유의 핵심이다. 자신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사람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는다. (중략)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p. 108-109

지인 중에 H는 늘 그랬습니다.


"나 있지, 힘든 일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의 저는 조금 멋대로인 성향이 있어서,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위와 같이 결론만 말하고는 했습니다. 그때마다 H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래, 뭐 말하고 싶으면 네가 말하겠지.
시간이 걸린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거고."


그 대답은 꽤나 위안이 되었고, 왠지 모를 신뢰감까지 주었죠. 그래서 결국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다 쏟아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말 하나에 위로를 받은 셈입니다.

본질에 집중하고 기다려줬기 때문인 거죠.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

p. 239

'꺼냈으면 빨리 얘기해라'는 식이었다면 거북이가 껍질 속으로 얼굴 넣듯, 아예 입을 다물었겠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내 사건에 대해 평가하고 OX결론을 내렸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였을 거구요.


H는 굉장한 힐러이고 청취자였습니다.

공감이란 나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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