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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Aug 31. 2021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02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빅터 프랭클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행복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것.

'이 상황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게 관심 가질 것.


이 책에서 하는 말은 바로 위의 것들이 아닐까.


연말이 다가오고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기분이 격동한다.

울적했다가, 주체 높을 텐션에 흔들렸다가.


그 어떤 순간이든지 최선을 다하며 보내고,

굳이 그 기분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을 것.


나의 9월에 보내는 다짐이다.


우울하거나 무기력하다면 그 상태를 즐겨보기.

언젠가는 다시 활기가 돋아날 것이고,

누가 부추기지 않더라도 다시금 쉼 없이 일하겠지.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2. 책 속으로


01. 시련

<시련의 의미>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02.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한 저명한 연구 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provisional existence)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아록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실직한 광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그들이 아주 기이한 형태의 변형된 시간 감각-내면의 시간-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 이것은 실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03.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병리적 상처를 정신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들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저자의 해결책/기대: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_스피노자 <윤리학>

-미래;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04. 살아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이런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더 나아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 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니체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인간에게는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왔다. 그중 61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기꺼이 그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능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자신의 의지를 충족시킨다느 의의를 갖게 된다.


05. 정신의 역동성


<정신의 역동성>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니체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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