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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Aug 03. 2019

03.'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순 '개뻥'.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_김정운

모든 사회에는 '금지'가 존재한다.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더 좋은 이상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종류의 금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주체로서의 삶은 바로 끝나는 것이라고.

심리학자 브렘(Jack Brehm, 1928-2009)'금지할수록 욕망한다'라는 심리적 반발 이론을 주장했다.

사실 굳이 심리학자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당장 TV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부모가 반대하는 사랑을 하는 커플, 어른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더 반항적으로 음악을 하는 십 대 밴드 등. 


금지도 위험한만큼, 이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것이 무조건 더 좋다고 여기는 것도 위험하다. 하지만 저자는 정작 위험한 것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언급한다.  외적 금지가 없어도 스스로 금지하고 체념하게 되는 현상이다. 



어릴 때부터 끈에 묶여 멀리 도망가지 못하던 코끼리가 이후 몸집이 커져서 도망갈 능력이 되어도 체념한 채 말뚝 근처에 머무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금지에 대해 침묵하며 받아들이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했다. '성숙한 사회' '금지'에 순응하며 저항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부딪치는 사회다.


모든 종류의 금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성숙한 사회란 온갖 종류의 금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유무로 결정된다. 조용하고 안정되었다고 좋은 사회가 아니다.
_p. 166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근의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금지에 시비를 거는 '시끄러운 한국'이다. 


도대체 한국처럼 안 되는 것 투성이의 나라가 지구 상에 어디 있었던가? 그래도 끊임없이 저항하고 소리 지르며 부딪쳤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금지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야말로 한국의 문화심리학적 특징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순 '개뻥'이다.
_p.166


더군다나 또다시 저항의 한국이다. 당연한 듯 '금지'가 걸려있던 것에 '왜?'라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사회적 논의를 거친 몇몇 '금지'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거나 이미 밟기도 했다. 


한때 나는 '금지'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노조가 있는 정규직이라든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럴듯한 회사 명패를 건 직원이라든지. 그런 사람이라야 '왜?'를 얘기할 수 있고, 노조가 없는 사람들이라든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회사 직원들에 대한 금지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대변해준다던지) 하지만 최근의 사회를 보면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사회를 바꾸는 건 내가 생각했던 '자격'과는 무관했다. 각자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왜?'를 외치면서 당연시되어 오던 '금지'를 사회적 논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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