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_김정운
이 책이 참 좋았던 것은 진지하면서도 때론 가벼웠다는 점에 있다. 밑줄 그으며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다가도, '이게 뭐람'하며 헛웃음 짓게 만드는 페이지들이 있었다는 것. 너무 좋다 싶다가도 가끔의 너무나도 아재 감성의 개그들.
'그리움'은 그림, 글과 어원이 같다. 모두 '긁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긁는다는 것이 뾰족한 도구로 대상에 그 흔적을 새기는 행위라고 할 때, 활자의 형태로 긁는 것은 '그림'이라는 말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마음속에 긁는 것은 '그리움'이 된다. 참으로 기막히게 아름다운 단어다. _p.97
저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꼽으라면 '어머니'와 '그리움'이라면서 '그리움'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그리고 그러한 막연한 그리움이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변할 때 생기는 심리적 반응이 바로 '설렘'이라고 언급했다.
행복의 기준이 바로 이 설렘의 유무이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설렘이 동반된다면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 된다고 그렇게 저자는 말했다. 누구든지 이 말에는 공감하지 않을까. 그래서 처음의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그때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일 테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고민이 대두되면서 '창의적 사고'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들린다. 저자는 그런 다양한 의견들 중 영국의 심리학자 윌러스의 창조적 사고 과정에 관한 설명을 인용한다
준비 단계 preparation stage
부화 단계 incubation stage
발현 단계 illumination stage
검증 단계 verification stage
_p.106
준비 단계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자료가 축적되어야 다음 단계에서 활용할 자원이 많아진다. 부화 단계에 이르면, 미성숙했던 생각이 어느 정도 시간을 거친 뒤 숙성된 아이디어로 나오게 된다. 이 부화 단계가 얼마나 걸리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세 번째 발현 단계에서 순간적인 직관이나 통찰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게 되며, 마지막 검증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해 발전시킨다.
저자는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부화 단계라고 얘기한다. 부화 단계는 열심히 하는 것과 무관하며, 휴식과 여가의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는 중에 갖게 되는 인사이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또다시 '고독의 시간'을 강조하는 셈이다.
일전에 읽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서적에서는 '창의적 사고'에 대해 이렇게 언급해 놓았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A에 +를 씌우는 것이 바로 '창의적 사고'라고.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사고를 하는 방식을 '고독의 시간'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가끔 이런 질문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어려운 질문이다. 하물며 1분 스피치라든지 작문 제시어로 '아나운서'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다른 제시어들이 나왔을 때보다 '아나운서'가 나오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어버버 거리기가 일쑤다.
그런데 갑자기 저자가 이렇게 언급했다.
구체화할 수 없다면 가짜다.
괜히 뜨끔.
스스로의 간절한 구체적 필요성이 있어야 공부의 방향이 명확해지며, 그래야만 공부가 재밌어진다. 삶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을 벌고 싶다면,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_p.112
위와 같은 것들 외에도 저자는 모든 것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교수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신의 구체적 생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추상적인 언어가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구체적 어휘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삶에서 구체화될 수 없다면 그것은 가짜이며 거짓말이라고 강조한다.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의 현란한 미사여구가 헷갈릴수록 질문하라고 얘기한다.
이제는 대답들을 찾아나가야 할 때이다.
심리학적 용어이다. 예를 들어, 이륙하는 비행기를 볼 때 망막에 비치는 비행기는 계속해서 작아지지만 우리는 비행기가 작아진다고 인지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비행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여긴다. 주위 환경이 바뀌더라도 그 상황과 관계없이 사물의 본질을 본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중요한 순간에 한쪽 눈을 감게 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라고 얘기하며, 원근법을 언급한다.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에 정확히 재현하려고 시도하면서부터 인간은 양쪽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우리는 중요한 순간이면 꼭 한쪽 눈을 감기 시작했다. 총을 쏠 때, 한쪽 눈을 감고 겨냥한다. 사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릴 때도 한쪽 눈을 감고서 대상의 크기를 잰다.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을 재현하는 원근법은 눈이 하나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백 년이 지나고 나서, 인상파 화가들은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파괴했다. 인류는 객관적 세계와 본질적 세계가 서로 다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여전히 21세기의 우리네 일상은 기계적 '외눈'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내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외눈의 카메라로 기록한 세계가 더 정확하고 진실하다고 믿는다고. 그래서 어딜 가든지 "와, TV에서 본 것과 똑같네"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스스로 파악해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강조한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스스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돌아다닐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보고 다녀야 한다고 얘기한다.
'감정이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불과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 1873년 독일의 심리학자 로베르트 피셔(Robert Vischer, 1846-1933)가 그의 박사 논문에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일어나는 미학적 체험을 '감정이입'이란 개념을 사용해 설명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전에는 없던 개념이란다.
독일어로는 Einfühlung. 들어가서 느낀다는 in-feeling 또는 feeling-into의 뜻이다. 어찌 됐든 인류가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뜻. 그리고 서로 관심을 가지고 흉내 내면서 소통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의 정서를 흉내 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고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흉내 내는 사람이 사랑받는다고 했다. 오래 함께 산 부부의 모습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생김새가 닮아서가 아니라 정서 표현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적고 있었다. 타인의 감정은 그 사람의 정서 표현을 그대로 흉내 낼 때 제대로 이해된다. 그래서일까. 2장의 마지막 즈음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설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논리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논리적 굴복을 요구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저항하게 되어 있다. '그래, 당신 말 다 맞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논리는 이해했지만 절대 승복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감정이입에 기초한 정서적 설득은 강력하다.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란 '함께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함께' 느낀 것이기에 논리적 설명은 오히려 구차한 것이 된다.
_p. 158
공감이 더욱 중요시되는 사회가 도래했다. '논리 정연'이라는 단어보다는 '감정이입'이라는 단어를 한 번씩 더 곱씹어봐야 할 때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