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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되찾는 스포트라이트

[작문] 제시어: 유튜브가 만든 세상

아이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그에 앞서 육아 관련 서적을 읽어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유독 공감 한 부분은 '둘째가 생겼을 때 첫째에게 주의해야 할 점'이었다. 그것은 첫째 아이의 마음이란다. 어린아이로서는 '나의' 부모님이 내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게 정말 큰 충격이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얘기했다. 나는 첫째다. 동생과는 세 살 터울이다. 동생이 생겼을 즈음, 부모님은 2-3살 아이 크기의 '양배추'라는 인형을 사 오셨다. 그리고 그 인형으로 미리 내 마음을 달래주고 준비시켜 주었던 듯하다.




그 교육방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나와 동생 사이는 여느 남매에 비해 조금 더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때 이미 나 홀로 내 인생에 주인공일 수는 없음을 배워나간 듯하다. 조금 이른 인생공부였다. 사실 이것은 단연 첫째 아이만 겪는 이야기가 아니다. 첫째들이 조금 더 일찍 겪을 뿐, 누구나 이런 경험을 겪게 된다. 어릴 적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었다. 적어도 자기 인생에서는 자기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란다.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하며 자존감 다치는 경험을 하기 시작하고, 사회에 진출하며 절감하게 된다. '나는 조연이구나'. 그런데 당신이 누구든지 여전히 주인공이라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곳이 있다. 바로 유튜브 세상이다.


당신에게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곳,
바로 유튜브 세상이다.



매 해 출간되는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에 의하면 작년 키워드는 소확행이나 케렌시아와 같은 것이었다. 개인주의다. 자기 인생에서 조연임을 깨달은 청춘들이 차라리 타인과의 연대를 끊는 과정이라고도 얘기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게 있다. 그들은 고독을 원하지만 고립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남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조연이 되고 싶지는 않은 그들의 돌파구가 유튜브였다. 유튜브 만든 세상에서는 어떤 누구라도 주인공이 된다. 화면 속에는 나만이 가득 담기고 스포트라이트도 화면 속 나만을 향해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얘기를 하고, 타 이용자 들은 그런 나를 지켜 봐주는 곳이 바로 유튜브다.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니다. 원할 때 소통하고 원하지 않을 때는 창을 닫으면 된다.



작년에는 20대와 30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드라마들이 다수 등장했다. 그중 하나였던 '청춘시대'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 시절 세상 모든 것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이제 그들은 유튜브가 만든 세상 안에서 위로를 찾는다. 주인공의 느낌조차 잃어버리고 살던 그들은 다시 주인공이 되어 자존감을 찾아간다. '브이로그'라고 불리는 일상 유튜브가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자신의 삶을 공유하며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굳이 브라운관 속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삶 만을 지켜보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생망'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청춘들이 자조적으로 일컫는 단어로,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뜻이다. 자신의 삶에 자조적이었던 청춘들은 '네가 주인공이야'라고 말해주는 수단이나 사람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 수단 중 하나가 최근의 유튜브가 만든 세상이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 세계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보조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주인공의 느낌을 다시 찾아 익히고 그 자신감으로 세상에 다시 서야 한다. 타오르는 불 앞에 다가서면 따뜻함을 느끼지만 정도 이상으로 다가섰을 때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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