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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의 페이스메이커

[작문] 제시어: 내로남불

-뉴스룸 앵커브리핑 중-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로남불'은 내가 창작한 말". 1996년 15대 총선 직후,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이른바 '의원 빼가기'를 시작했다. 여기에 대해 야당이 비판하자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반박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만들어졌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곳에는 욕심 또한 가장 많이 모여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느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욕심이 타인을 향할 때 그것은 질투가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변모할 때 내로남불이 된다.



성경이나 탈무드와 같은 서적들은 얘기한다. '시기 질투하지 말라'.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부정적으로 쓰이는 이 단어들도 장점이 있다. 욕심이나 질투는 어떤 면에서 동기 부의 근간이 된다. 다시 말해서 내로남불은 2등의 페이스메이커다. 42.195km, 너무 길어서 완주하기도 힘든 마라톤에서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 막중하다. 페이스메이커는 주자로 하여금 골인점까지 완주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준다. 내 능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서 좋은 기록을 달성하도록 이끌어준다.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욕심의 키워드들이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면들을 가지고 있다.


2등의 대명사인 살리에르가 그 위치까지 오르고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모차르트를 향한 질투심이 아니었을까. 그는 평생에 걸쳐서 모차르트를 이기고 싶어 했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모차르트가 35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살리에르는 도리어 허무해했다. 모차르트가 그의 동기부여였던 이유이고 그를 향한 질투심이 살리에르에게 페이스메이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있다. 늦은 나이에 등단한 헤밍웨이는 인기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피츠제럴드를 늘 시기했다. 그렇게 시기하며 끊임없이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순위는 역전되었다. 자신의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아서 1등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내로남불로 시작한 질투의 키워드들은 2의 페이스메이커다. 결국 타인을 향한 질투와 이기심이다. 그렇기에 그 대상을 극복했거나 그 대상이 사라졌을 때 2등들은 당황한다. 살리에르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헤밍웨이가 끝내 부정적인 선택을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늘 '결'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저 '1등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어떤'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목표 삼고 싶은 '어떤'을 찾은 뒤에 달리는 마라톤이라면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창 밖에 봄 꽃들이 저마다 자기 색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어느덧 4월이 와버렸다. 아직까지 삶의 결이니, 철학 같은 것을 찾지 못했다면 올해는 본능적으로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질투심, 욕심, 내로남불이다. 그것들의 장점을 찾고 지금부터 출발해보자. 그 여정에 자신만의 철학을 찾는 것은 꼭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하지만 일단 시동을 걸기에 욕심 가득한 키워드들 만큼이나 강력한 엔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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