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키워드 중 3개 이상을 사용해 자유롭게 작문하시오: SNS/ 혐오/ 침묵/ 영웅/ 미세먼지/ 정화/ 이상한 나라 앨리스/ 폭염/ 1987/ 불확실성/ 가족/ 갑질/ 인정욕구/ 소확행/ 불확실성/ 언어/ 자살/ 가짜
[#첫출근 #신입사원 #입사 #첫명함]
새 명함과 함께 SNS에 게시글을 올렸다. 곧 100개가 넘는 좋아요와 댓글이 이어졌다. K는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취업한 자신이 효녀라고 생각했다. 비록 지사의 위치가 지역인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대기업이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그런 곳. 부모님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래서 K양은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쁜아~ 오빠, 커피 좀.”
“아가야, 잠깐 여기 좀 와볼래?”
그 이유는 언어였다. 이전까지 K가 속했던 사회에서는 듣지 못했던 언어. 하지만 이 사무실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통용되고 있는 불편한 언어. K를 이름이나 직책으로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상했다. 이곳 남자 선배들은 다른 젊은 여자 선배들에게도 비슷한 언어 유형을 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 번은 K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런 말을 듣는 게 정말 괜찮아요?”라고. 하지만 그들은 도리어 “어른들이 원래 그렇죠, 뭐”라며 K를 달랬다. 곧 익숙해질 거라며. K는 생각했다. ‘기분 나쁘다고 내색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 그리고 사무실 분위기만 나빠질 거야. 그냥... 가만히 있자.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야..’라고.
사실 억울했다. 문제의식을 느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실제 사회는 너무도 달랐다. 회사 생활은 점점 숨이 막혀갔다.
“M양아, K양 좀 봐라. 얼마나 날씬하고 예쁘니. 너도 애 낳으려면 살 좀 빼야지. 둘째 낳고 싶다며~”
이제는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비교까지 한다. K는 이 상황이 너무도 불편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입술을 떼려는데 옆자리 남자 선배가 선수를 친다.
“안 그래도 요즘 M양, 다이어트한다고 매일 샐러드 먹더라고요, 부장님~허허허.”
사무실 내 사람들은 오늘도 역시 침묵하거나, 또는 웃으며 동조하기 바쁘다. 늘 그렇듯이.
“K야, 너 솔직히 말해봐. 너 몸무게 **이지?”
“네? 아..아니에요..”
“에이~내가 지난번 A지사 있을 때 L이 딱 네 키에 네 체구였는데 걔가 **이랬어. 너도 분명 **정도일 것 같은데? 거짓말하지마~”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맞닥뜨린 상황.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웃으며 사람 좋게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자신도 K는 부끄러웠다. 또한,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그 상황도 실망스러웠다.
그날 K는 문제의식은 없고 침묵뿐인 자신의 사무실에 대해 생각한다. 뉴스에서는 미투에 관한 이슈가 한창 다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K의 사무실 안에서는 여자 직원들의 몸무게 맞추기가 심심치 않게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문제의식만 겨우 가지면 뭐 한담. 아무것도 행하질 못하는걸.‘
K는 자신 또한 사내 기성 세력들에게 목소리를 내지 못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도 자취방에서 홀로 한숨을 내쉰다. 함께 고민을 나누고 얘기할 동료만 있었더라도 목소리가 모였을 거라며 홀로 아쉬움을 삭힌다. 아무래도 한 명만의 생각과 목소리는 너무도 약하다. 홀로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K는 너무 약했다.
K는 시사에 관심이 많았다. 매일 뉴스를 시청했고, 신문도 구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바로 자신의 사무실에서조차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의견이 있음과 밖으로 말할 수 있음에는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새로운 직원 S가 들어왔다.
K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새로 온 S를 지켜봤다.
마침 한 남자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다.
"오빠라고 불러~, 회사생활 힘든 거 있음 언제든지 말하구!"
S가 대답한다.
"어머,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희 엄마랑 비슷하실 것 같은데 아빠는 어떠세요? 아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를 제안한 직원이 머쓱해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를 지켜보던 K의 입꼬리도 함께 올라간다.
'잘하면, 좋은 동료가 될 수도 있겠는데?'
혼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K의 '약함'을 보강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의식만 같은 부분에서 갖게 된다면, 둘은 좋은 동지가 될 수 있을 터이다. K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식으로는 저 일 못 해요."
아침부터 사무실이 시끄럽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S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유는 남자 선배의 농담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배 좀 보라며 ’여자가 몸매 관리를 해야지‘라고 얘기를 했고, S는 그 얘기에 화가 난 듯해 보였다.
"지난주에 성희롱 예방교육 함께 들으셨죠? 그거 성희롱이에요, 선배. 저 정식으로 신고하겠습니다. 사과하세요“
K는 숨을 죽였다. K가 그토록 하고 싶던 말이었지만 하지 못했다.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지금 S가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