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키워드: 여행, 하루
"여행이 삶처럼 보이는 사람도 '여행 가고 싶다'라고 얘기한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의 직업이 늘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이든지 항상 출장을 다니는 일이든지 무관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맡겨진 일에 쫓기고, 타인에 의해 내 시간이 좌지우지되고는 한다. 하지만 여행은 대체로 내가 계획하고 스스로 주도한다. 그렇기에 여행은 일탈이라고 불리며, 이런 여행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자신이 원할 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출퇴근길 지하철만큼이나 현실은 그저 갑갑할 뿐이다. 휴가를 하루 내기도 쉽지 않고, 온전히 주말을 쉴 수 있음에도 감사한다. 누구나 여행을 가고 싶어 하고 열망하지만 쉽지 않다. 해외여행은 물론, 가까운 국내 여행조차 어려운 현대인들을 위해 새롭게 등장한 단어들이 있다. 바로 호캉스 그리고 홈캉스다.
호캉스와 홈캉스의 공통된 장점은 멀리 가지 않아도 되며, 긴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여행의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도 호텔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먼저 늘 반갑게 맞이해주는 직원들과 수많은 타인들이 언급했다. 주인공의 기분을 만끽함과 동시에 익명성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늘 깨끗한 침구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장소와 가구, 사물에 기억을 담는다. 매일같이 하얗고 깨끗한 침구로 바꿔주는 호텔은 그러한 기억들을 항상 새것으로 바꿔주는 장소인 셈이다. 과거의 근심이나 걱정을 상기시켜주는 무언가가 없기에 그것들을 끌어안고 있을 필요도 없게 된다.
그의 '호텔 사랑' 이야기를 듣고 분석해 보다 보면 지혜로운 홈캉스 방법이 도출된다. 자신의 뇌를 속이는 것에서 홈캉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가구를 재배치하고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새로운 곳에 온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지금의 방 구조와 배치된 가구, 사물들에는 나의 과거로부터 시작된 고민들이 너무도 많이 묻어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홈캉스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책상과 침대의 위치를 바꾸고, 미뤄왔던 방 청소를 해보는 건 어떨까. 멀리 떠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까지는 없더라도 내 마음만큼은 새로운 곳에서 여유를 찾도록 말이다.
처서가 지나고 슬슬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는 8월 말이다. 아직까지 휴가를 못 간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은 퇴근길에 계획을 구상해보자. 새 달과 새 계절은 새 공간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휴가 계획은 해외여행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잘 구성한 계획 뒤에 가구를 배치하고 정돈을 해야 더 만족스러운 휴가가 될 테니까. 제대로 홈캉스의 기분을 내기 위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이 직접 구성한 새 장소에서 새로운 뽀송뽀송한 기억들을 쌓아나가자. 어쩌면 지금까지 다녔던 휴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휴가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