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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Nov 08. 2019

내가 맹장염이라니

엎어진 게 아니라, 도약을 위한 뒷걸음질:)

01. 시작은 좋은 달이었다고.


"있잖아. 이번 달은 시작부터 바빠. 그래서 괜히 활기가 돋는달까!!"

전화를 하며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10월의 마지막 날, 스케줄이 가득 차있었다.

이 날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강남에 가던 중,

사달이 났다.




02. 내가 급성 맹장염이라니.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점심때 먹은 게 체했나.."


평소에도 아픈 걸 참는 편이다.

'참으면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그런데 웬걸,

4시간이 지나도 복통은 가라앉지 않았고 도리어 심해졌다.


결국 저녁 9시,

태어나 처음으로 응급실다.


복잡 미묘한 기분에, 결국 울어버렸다.


"이렇게 하면 아파요? 여기는요?

자, 눌렀다가 떼어볼 거예요. 어때요?

아파요? 흠.."


윗배가 아프다고 병원에 왔는데,

의사가 아랫배를 누르자 그 부분의 통증이 더 심했다.


"먼저 초음파 검사를 하고 CT엑스레이도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맹장염이 의심되네요."


맹장염???

초음파 검사? CT?

그거 내가 찍어도 되는 거야???


피검사, 소변 검사, 초음파 검사, 엑스레이 검사까지 마치고서야 CT 검사실 앞에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렸다.


화요일 저녁,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굉장히 붐볐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무엇보다 바빴다.


피검사를 하겠다며 팔에 바늘을 꼽던 간호사는

혈관을 잘못 건드렸다.


'후두두둑'


세상에..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라는 말은 바로 이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이었을 거다.


CT실 앞에서 대기하던 시간은 조금 더 무서웠다.


응급환자들이 많았다. 큰 사고가 있었는지 피가 흐르는 모습인 사람도 있었고, 다들 베드에 실려서 의식 없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조윤하 씨"


드디어 내 차례.


드라마에서나 보던 곳이었다.


'저 큰 동굴 같은 곳에서 나를 찍는다는 말이지? 끄아!!!

이거 닥터 프리즈너(KBS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건데!!!!!'


내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흥분을 하면서 베드에 누웠다.

생각보다 차갑고 딱딱했다.

의사의 지시대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촬영이 끝났다.


"검사는 다 끝났고요. 이제 B9베드로 가시면 됩니다."

"언제 집에 갈 수 있나요?"

"일단 모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해요.

그런데 현재 초음파 검사, 피검사와 소변 검사에서 급성 맹장염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아직 CT는 안 나왔지만 거의 90%에요.

급성 맹장염이면 당장 수술해야 해서, 오늘 밤에는.. 못 가셔요."


집에 못 간다고?

잠깐만, 내일 일정은?


밖에서 기다리던 부모님에게 오늘 안에 못 돌아간다는 얘기를 전했다. 일단 엄마라도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아빠가 엄마를 집에 데려다주러 간 사이에 의사가 마지막 결과를 들고 왔다.




03. 제가 수술을 합니다..


"네, 급성 맹장염이 맞아요.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어.. 그런데 제가 사실 내일 일정이 있는데..

내일 시험 보고 나서 수술해야 하면 안 되나요..?"


"음.. 그 시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정인가요..?

이거..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안에서 터질 수 있어요. 사실 지금 터졌을 수도 있고요.

시한폭탄 같은 거예요. 언제 터질지 몰라요. 빨리 수술할수록 좋은 거예요.

안에서 터지면 배 안에 피가 차게 돼요. 수술은 관을 꼽고 진행해야 하고요, 최소 일주일은 입원해야 하는 큰 수술이 됩니다. 운이 나쁜 경우에는 패혈증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어요. 잘 생각해봐요."

"아... 수술.. 해야겠네요."


저렇게까지 무섭게 얘기하는데.. 안 할 수가 없지.

'수요일 일정, 안녕. 더 좋은 곳이 있을 거야. 너와는 내가 연이 아닌가 보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이 시작됐다.

수요일 새벽 1시 30분, 수술 시작.

화요일 새벽부터 분주했던 터라 피곤했는지, 마취제에 저항해볼 틈도 없이 잠에 들었다.


수요일 새벽 3시, 수술 끝.

입원실로 돌아와 베드를 옮기는 과정에서 잠이 깼다. (깬 건지 깨운 건지..)

그때의 고통은.. 정말.. 끔찍 그 자체.

생각보다 일상생활 중 배에 힘을 많이 준다는 걸 깨달았다.


옆 침대로 넘어가는 데에도 배가 아파서 거의 울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의 손과 의사 선생님의 팔에 의지한 채로.


"마취가 깬 뒤에 잠을 자야 해요. 지금은 잠이 들지 않아야 합니다."


아파 죽겠고, 피곤해 죽겠는데 왜 자꾸 깨라는 거지.


옆에서 아빠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주고, 같이 대화를 하다 보니 조금씩 마취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의사와 간호사가 이런저런 약들을 넣었다.


이 날의 기억은 여기까지.

그러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아빠는 결국 내 옆에서 밤을 새우고 출근을 하셨다.


수술을 진행한 지인병원. 이름이 진짜 '지인'병원이다.

04. 프리랜서는 몸이 돈이지..



다음 날은 오전 여덟 시쯤 일어났던가..

엄청난 통증이 동반됐다.


새로운 거즈로 갈고, 주사도 맞고.


물도, 음식도 모두 금식.

말도 안 돼.


우선, 당장 이번 주 일정들을 모조리 취소해야 했다.


수요일 오전에 있는 과외 취소.

목요일 강의 취소.

금요일 과외 2개 모두 취소.

아, 물론 수요일 일정에 대해서도 전화드리고..


눈물겹도록 힘들었던 시간;(

프리랜서는 몸이 돈이다..

쉰 만큼 돈을 못 버니.. 아픈 것은 정말이지 손해.


12시 즈음부터 물은 마셔도 된다고 하기에, 조금씩 물을 마시기 시작.

저녁 식사부터는 먹어도 된다고 해서 저녁식사를 너무도 맛있게 흡입.


그러던 중 새로운 연락이 왔다.

"이거 한 번 해볼래요? 홍보영상 촬영이에요."


05. 역시, 이번 11월은 기대돼.


이번 주 일요일(10일),

홍보영상 촬영에 인터뷰 아나운서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의 연락.

"이력서 한 번 보내줄래요? 포트폴리오 영상이랑." 


목요일 오전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부랴부랴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던 영상과 이력서를 첨부해 보냈다.


"역시 신이 나는 달인 것 같아.

  이번 11월, 힘이 나:)"


이제 내일이면 퇴원.

금요일 오후에 퇴원이 예정되어있다.


잠시 엎어져서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지만 그도 아니었던 것 같다.

새로운 점프를 위한 뒷걸음질이었을 뿐.


뭔가 변화가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야호.


변화, 언제나 환영.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건강해진 몸으로!!


사달이 나기 전, 화요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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