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전쟁_매튜 스탠리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의 첫 장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숲에서 가장 키가 큰 상수리나무는
어떻게 그토록 클 수 있었을까?
a. 가장 단단한 도토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b. 다른 나무가 햇볕을 가로막지 않았기 때문에.
c. 토양이 깊고 풍요로웠기 때문에.
d. 벌목꾼이 잘라내지 않은 덕분에.
e. 토끼가 이빨을 갈기 위해 밑동을 갉아먹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가 싫어서 종래에는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 국적까지 버렸던 10대였다.
중졸에 무국적자인 아들을 그들의 부모님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리고 도전한 스위스의 대학은 떨어지고, 재수를 한다.
그러나 그런 그가 지금 우리에게는 최고의 천재로 회자되고 있다.
모든 독일 남자가 그렇듯 그도 군 복무를 해야 했다.
학교도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군 생활을 현실적으로 견뎌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궁리 끝에 1894년,
가족의 지인을 설득하여 '신경 쇠약' 진단을 받아 냈다.
이 질병은 대표적인 19세기 질병으로,
머리를 너무 많이 쓰고 신경 체계가 무너진 경우에 내려지던 병명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진단을 핑계 삼아 졸업 전에 학교를 퇴학해 버렸다.
더 나아가 독일 국적까지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졸업장도 안 받고 갑자기 퇴학한 무직자 아들을
부모가 전혀 탐탁지 않게 생각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p.23
아인슈타인은 이 진단을 핑계 삼아 졸업 전에 학교를 퇴학해버렸다.
더 나아가 독일 국적까지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여기에는 자유롭고 평안했던 집안 분위기가 한몫했지 않았나 싶다.
그는 물리학 실험실에서 조교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ETH졸업생 대부분은 그런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아니었다.
그런 자리를 얻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통상적으로 지원자의 근면성과 책임감을 칭찬하는
학부 교수의 추천서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가르친 교수들은
이 게으른 녀석이 수업을 빼먹던 기억이 생생했고
때문에 그의 응시를 도와주지 않았다.
p. 43
그즈음 처음으로 전문적인 물리학자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9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 자리가 났을 때,
아인슈타인은 드디어 자신에게 추천서를 써 줄 사람을 찾았다.
1등 후보자가 갑자기 폐결핵에 걸려 경쟁에서 물러나자,
교수 자리는 아인슈타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프라하의 독일 대학교에서 보수가 두둑한 정교수직을 제안받았다.
비록 충성 맹세를 해야 했고,
생애 처음으로 '유대인'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했지만,
어찌 됐든 그와 그의 가족은 프라하로 이동하게 된다.
*WWI : 1914.07.28-1918.11.11
*WWII : 1939.09.01-1945.09.02
마을의 1/6 가량이
상상 속의 시민 저격수를 쫓는 병사들에 의해
처참히 파괴됐다.
대학 도서관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문화재들이 훼손됐다.
(중략)
모든 나라의 학자들 것이어야 했던
책과 두루마리는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독일은 독일을 지성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에 수십 년을 들였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노골적인 군사적 이익을 위해 희생시켜 버린 듯했다.
p. 158
독일은 독일을 지성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에 수십 년을 들였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노골적인 군사적 이익을 위해 희생시켜 버린 듯했다.
전 세계의 지식인, 예술인들이
독일을 비난했음은 당연하게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독일의 지식인들은 '성명서'를 작성해
독일과 독일군의 행위에 대해 옹호했다.
명령에 의한 영웅적 행위,
무분별한 폭력,
그리고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온갖 혐오스러운 헛소리
-내가 그런 것들을 얼마나 열렬히 증오하는지.
p. 153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동료들의 의견에 절망했으나,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동료는 소수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독일 지식인 최상류 층들이 서명했고(아인슈타인은 X),
그들은 자신을 비난하는 나라와 사람들을 납득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해당 성명서는 도리어 독일 지식인 리더십을 약화시켰고
서명한 모든 지식인들의 수준을 끌어내렸다.
아인슈타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자신의 것(연구)에 대한 꾸준함이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확실하다면,
주위의 부정적인 소리를 차단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적어도 자신은 스스로를 믿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나를 지키는 첫 번째 방법이고,
내가 성장하기 위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