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sser panda Jun 17. 2021

N잡러 이팀장 ㅡ 19

19. 평생 숙제

새벽까지 회식한 다음 날도 어김없이 지각하는 자는 회사에

뼈를 묻을 신대리뿐이다.


ㅡ와우, 술병 나서 회사에 못 나온다고 아침에


전화하는 용자의 클라스라니!


그래도 괜찮다. 가끔 갑자기 쉬는 그의 습관을 회사는 눈감아준다.


어차피 회사에 뼈를 묻을 사람이고 연차도


술병 이외에는 쓸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 면죄부다.


누가 봐도 딴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투명한 생각과 행동의 표본이랄까.


회사의 월급 마약을 먹는 자란 저런 마음가짐과 자세여야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


‘아니 출근 준비하면서부터 나가기 싫다.’


어느새 출근이 지옥이 되어버린 경험.


신대리 말고 나를 포함한 모든 회사 사람들에게는 보이는 표정과 말이다.


전날의 숙취와 피로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괴롭힌다.


업무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몸.


일이 끝나자마자 칼퇴각이다.


집에 가서도 방바닥에 붙어 일어나지 않을 예정된 스케줄.


이래 가지고 N잡을 어찌하려나.


그래도 이동 중에도 꾸준히 유튜브를 보며


부업거리를 찾아본다.


간단하고 쉬운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이른바 정보 과잉, SNS 과잉이라지만


그 중에서도 나에게 좋은 정보는 과잉이라도 좋다.


어떻게든 내 것을 만들어 정리하고


하나씩 준비를 해야 한다.


수첩의 메모는 점점 늘어난다.


회사 수첩 말고 내 비밀병기 빨간 수첩.


회사에서의 노하우도 내 빨간 수첩에 메모해 놓는다.



오지라게도 아끼는 대표와 이사, 경리과장의 언행에


업무에 지장이 있을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회사를 내가 주인인 것처럼 이라는 모토를 삼아


메모해둔다. 적정선을 지키자는 다짐과 함께.


싫어하던 그 비용절감이라는 목표 아래 하던 사소한


하나까지도 따라 하다가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길고양이 일명 길냥이가 나를 보더니


배를 뒤집어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듯 애교를 부렸다.


그런 고양이의 모습은 처음 본 나는 나도 몰래 미소가 지어졌다.


강아지 같은 길고양이의 애교에 위안을 얻어 하루의 기분전환이 조금 되는 것 같았다.


왠지 길에서 살던 아이는 아닌 것 같고 집에서 나온 것 같은데


뭔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까 한참을 쳐다보다가


‘난 너에게 줄 것이 없어.’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에 고양이는 차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린 후 없어졌다.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난 후에 차 안을 들여다 보아도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무서워 도망치더니 내 앞에선 배를 보이며 애교 부리는 고양이.


‘냥이 너도 자기편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냐.’


집으로 올라와서 고양이의 장난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기분 좋은 잠이 들었다.


워크숍의 장기자랑 숙제를 생각한 채로.

작가의 이전글 N잡러 이팀장 ㅡ 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