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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A Feb 13. 2022

엄마 A의 코로나 일기-2

#미안한 엄마와 행복한 아이

 시부모님( 꿀띠는 내가 출근하면 시어머님이 어머님 댁으로 데려가서 아이를 봐주시는 데 마침 그 주는 목요일까지 아이가 시댁에서 잠을 잤고, 주말에도 계속 시댁에서 밥을 먹었었다. )과 나, 아이, 남편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꿀띠는 양성. 남편과 시부모님들은 음성. 나는 ‘미결정’ 통보를 받았다.


‘미결정’이 뭐죠?

검사 수치가 양성과 음성의 경계상에 있어서 재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회사에 연락을 하고,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연휴 마지막 날 PCR 검사를 하러 갔다. 선별 진료소 오픈 시간보다 전에 갔지만 이미 엄청나게 긴 줄이 있었다.  미결정이라는 게 있는 건 또 처음 알았네. 재검사라니. 아이가 확진 통보를 받고, 나도 어제 계속 열이 있었다. 요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자기도 했고, 몸살 기운도 왔다. 꿀 띠는 그래도 열이 많이 잡혀서 37~38도를 왔다 갔다 했다. 38.5를 넘기면 해열제를 먹이고 그 이하는 그냥 지켜보는 중이었다. 연휴 동안 확진자가 급증한 탓에 치료센터에 들어갈지 재택치료를 할지를 묻는 전화는 아직 받기 전이었다. 지금의 상태로라면 집에서 좀 쉬게 해 주면 금방 나을 것 같아서 그래도 -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길고 긴 대기줄에는 간혹 어린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혹은 안겨서 줄을 서고 있었다. 세상이 이래서 너희들이 고생이구나.. 11시 이전에 검사를 받으면, 당일날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해서 서둘러 간 거였지만- 내 검사 차례는 11시가 넘어서야 받을 수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줄을 서있다가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 “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남편과 아이는 날 기다리다가 밥을 먹었다고 해서 나는 죽을 시켜먹고, 감기몸살약을 먹었더니 잠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아이는 놀자고 보채는데 몸이 축축 쳐졌다. 안아달라, 이쪽으로 와서 같이 장난감 놀이하자, 책 읽어달라. 아이의 요구사항은 계속되는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화상회의로 일을 하던 남편이 잠시 시간을 내줘서 나는 잠깐이나마 낮잠을 잘 수 있었다. 아이가 아픈데 나까지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정말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나는 - 내가 회사를 다니니까, 우리 집에서 나만 조심하면 코로나는 안 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프리랜서인 남편은 늘 재택근무를 하고 업무상 사람들을 만날 때도 마스크만 하고 일을 하고 밥은 늘 집에서 먹고 있었다. (아주 가끔 어쩌다 한번 동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도 있지만. ) 그래서 나는 진짜 저녁 약속도 잘 안 잡고, 주말에도 웬만하면 아이와 집에 있고. 아이와 외식도 무서워서 잘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코로나를 달고 왔다. 조금 허무하고..  왠지 억울했다.


SNS에는 설 연휴라고 놀러 간 친구들, 호캉스, 힙한 레스토랑 사진이 넘쳐나는데. 우리 아이는 설에 세배할 때 입으려고 사놓은 예쁜 한복도 못 입고(열나서 얇은 내복만 입고 있었다.) , 밖에 눈 오는데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눈 구경만 해야 하고. 그러다 문득 - 내가 마스크를 좀 더 꼼꼼하게 쓰고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내가 컨디션이 더 좋았으면 널 더 잘 케어해줄 수 있을 텐데. 나까지 아파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꾸역꾸역 밀어 넣었던 안 좋은 생각들이 자꾸 새어 나왔다. 회사는 어떡하지? 다음 주에 중요한 미팅 있는데.  다음 주 까지 끝내기로 한 일들은? 어른들은 코로나 걸리면 아이보다 회복이 더 더디다던데.. 나도 아무래도 코로나겠지. 갑자기 더 아파져서 내가 널 돌보기 힘들어 질정도 아프진 않겠지?

엄마가 지켜준다고 해놓고 같이 아파서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 엄마. 나 너무 행복해 “
“응? 갑자기 왜에? “
“엄마랑 계속 같이 놀아서. 엄마 사랑해. 하트!”


아이가 쪼르르 내게 달려와 안기면서 말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재택치료 중에도 확진자는 영역을 분리시키고,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고 했는데 우리 집 확진자는 내게 안겨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나를 만지며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 이런 슈퍼 확진자를 내가 무슨 수로 당해. 부처님, 예수님이 와도 너랑 나 분리 못 시켜. 어차피 난 옮았을 거야. 그래. 쟤가 나한테 옮긴 건데, 내가 미안해하지 말자. 이미 일어난 일. 아예 안 걸렸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아프고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자. 더 크게 아프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같이 이렇게 웃으면서 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다음날. 나는 양성 [확진]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남편 K가 열이 나서 검사를 또 받고 왔다. 그리고 다음날 K도 양성[확진] 문자를 받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재택치료(?)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확진 문자를 받은 시점에선 셋다 이미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우울한 맘이 들라치면,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고 (꿀 띠는 패딩을 입히고.) 청소기를 돌렸다. 최근에 늘 바쁘다고 귀찮다고 대충 청소했더니, 구석구석 묵은 먼지가 눈에 보였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엉망이 된 옷장 서랍도 매일 조금씩 정리 중이다. (아직.. 진행형이다.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사실- 한동안 나는 좀 지쳐있었다.


일도, 육아도 병행하기 버거운데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건 없어서 늘 조금 피곤한 상태였다. 내가 ‘안’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 돌보는 것뿐이어서- 난 조금씩 나를 방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잘하고 싶은데, 일도 육아도. 그래서 자꾸 조급해하고 잘하고 싶은 맘만 앞서서 엉킨 실타래만 들고 꼼지락 거리는 기분이었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우리 가족에게 온 지금 시간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일어난 사고다. 이제 치료를 하자.

여전히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는 건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그래서 좀 적당히 하기로 했다. 엄청 집중해서 같이 열정적으로 놀아주다가도 내가 피곤하면 슬그머니 불량엄마 모드로 방바닥에 누워 뒹굴기도 하고. 꿀띠 노래에 맞춰 셋이 춤을 췄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배달 앱을 켜거나 토스트에 잼을 바르고 바나나를 직접 썰어서 올리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슈크림을 잔뜩 시켜서 아이와 함께 먹기도 했다. 놀아주다가 너무 피곤하면 그냥 TV를 틀어주고 같이 만화를 봤다. 몇 년을 서랍 속에 묵혀봤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서 아이 사진을 찍었다. 그냥 우리의 소소한 오늘을 기록하고 싶었다. 아이는 함께하는 모든 것에 즐거워했다.

매일 밤 자려고 누우면 “오늘도 우리 재밌게 놀았지. 엄마. 내일 또 재밌게 놀자”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어린이 집이 가기 싫다고 한다. 계속 이렇게 엄마랑 집에서 놀 거라고. (너무 무서운 소리다.)

생각해 보니, 내가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달 쓰고 바로 복직을 하고, 이렇게 긴 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여름휴가도 끊어서 써서 이렇게 풀로 일주일 넘게 함께 하는 건 복직 이후 처음이었다.) 밀린 회사일도 좀 걱정이지만, 회사야 나 없어도 잘 돌아가니까 - 어차피 이 몸(?)으로 출근도 못하고. 그냥 아이의 사랑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지금 이 시간을 오롯이 즐겨보기로 했다.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이렇게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니 그동안 오랜 시간 함께해주지 못한 것에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엄마는 계속 미안함을 느낄까? 아이는 행복하다는데. 엄마라는 존재가 가진 숙명 같은 걸까? 줄 수 없는 모든 것까지 다 주고 싶어서?

나는 - 되도록 덜 미안해하기로 했다. 대신 아이의 ‘행복’에 더 많이 공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의 행복은 참 단순했다. 그냥 지금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엄마랑 함께 있으면 그걸로 행복했다.

어제 아파서 열난 건 지금 아이의 행복에 어떤 작은 상처도 내지 못했다. 그저 나만 그것들을 붙잡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 이만큼 - 복잡하고 - 나의 행복에 둔감한 - 어른이 되어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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