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뭐랄까
어떤 벽을 넘어선 날이었다.
써니 언니 부부와 우리 부부가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아이 문제로 시작해서 부부가 겪어온 힘든 시간들을 거치고 부모님께 겪은 상처까지 드러났다.
어떤 상담 센터보다도 훨씬 나은 방향으로 각자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의 대화를 나눈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어느 경지에 선 관계는 그렇게 치유의 단계까지 갈 수 있다.
내게 돌아가신 아버님과의 관계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 남편에게, 아버님에 관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지막을 마무리하시며 어머님도 자식도 함께 깊이 생각해 주신 아버님 모습을 얘기하니 놀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그리고 나머지를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인간에 대한 어떤 규정은 굉장히 섣부르고 위험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잘못이 없다. 보이는 대로 판단했을 뿐이니 말이다.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더욱 오래된 생각들이 나를 붙잡았다.
우린 사랑할수록 서로 많이 보여주고 위로해야 한다. 그저 내가 열심히 살며 너희를 돌보는 것으로 더 무엇을 바라냐는 마음보다는 나를 보여주고 그들의 마음을 들여야 봐야 한다. 받아서 마땅한 사랑도 없고, 주는데 당연한 사랑도 없다. 우리 시절의 빡빡한 부모님의 모습들을 지금껏 당연하다 생각지 말자. 그럼 나의 자식들도 그게 다라고 생각해 버릴 테니 우린 그러지 말자.
아버님을 다시 돌아보고 깊이 생각해 볼 남편은 이제 아버님과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은 그분의 언더 어느 부분에서 자신의 오랜 결핍을 놓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새롭게 올라선 바위 위에서 아들 둘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충분히 전하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밝게 비추는 보름달을 우리 부부는 신기하게 바라봤다. 얼마나 맑고 밝게 밤하늘을 비추는지 마치 아들을 생각하는 하늘의 아버님 모습같았다.
남편은 그 시간 아이가 원하는 간식을 사려고 세 군데 마트와 편의점을 순회했다.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 우린 몇 배의 사랑으로 나눠줄 수 있다.
밤하늘은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