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닌 친구를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난다고 했고 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쉬겠다고 잘 다녀가라고 얘기했거든. 지금 내가 가고 있다는 걸 모를 거야.
서프라이즈~~라고!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빈손은 아쉬우니 책을 사려고 마음 먹고 나섰는데 서점이 문을 안 열었을 것 같아 걱정했어. 올해 내 덕분에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고 언닌 늘 고맙다고 말했잖아. 올해 마지막 선물로 꼭 언니에게 시집을 사주고 싶었어. 다행히 서점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나이 지긋하신 주인아저씨께서 계셨어.
반갑게 뛰어들어가서 문 열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주말도 쉬질 않으신대. 37년 동안 그렇게 하셨대. 그 성실함으로 무장된 동네 책방 아저씨는 책 정리로 까칠하고 두툼해진 손끝을 가지셨더라고.
그 손이 지난 37년을 모두 담고 있는 듯이 보였어.
그분은 내가 시집을 고르고 있으니 이런저런 책을 주르륵 내 앞에 펼쳐주셨지.
난 언니와 비슷한 결의 따뜻함을 담은 나태주 님 시집을 골랐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언니 친구분에게는 정현승 님 시집을 샀지.
투박한 손길로 손수 책을 포장하시면서 아저씨께서는 선물 중에서는 진짜 책 선물이 좋지 않냐고 하셨어. 물론이라고 말씀드리며 마음으로 아직도 이렇게 동네 서점으로 남아주셔서 감사했어.
책 두 권을 손에 들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이리저리 흩어져 가는 거리로 나섰지. 이제 200미터쯤 걸어가면 언니를 만날 수 있어.
늘 내게 사랑과 칭찬을 쏟아부어 주는 언니에게 여자 산타가 되어 날아가는 거야. 루돌프는 없지만 종종거리며 내 두발로 캐럴 같은 박자를 싣고 가고 있어. 어두워진 거리에 반짝이는 가로등과 가게의 불빛은 유난히 다정하고 포근해 보인다.
우리 내년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며 기쁠 때도 힘들 때도 함께 하겠지.
기억나? 내가 먼저든 언니가 먼저든 이 생의 마지막 날 꼭 손잡아 주기로 했잖아. 가족들 틈에 언니의 모습을 보면 주륵 눈물이 나겠지. 생각하는 지금도 몽글몽글한 비눗방울들이 내 코끝에 모여 있는 것만 같아.
끝까지 서로 손잡고 갈 우리의 길에는 저 포근한 빛들이 환하게 밝혀줄 거야.
엇! 언니다.
<서른>이라는 가게이름이 보이는 슬라이딩 유리도어 안에 언니가 친구와 함께 웃고 있네. 바로 그 테이블 가까운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다가 언니와 눈이 마주쳤어. 3초 정도는 나를 예상하지 못해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환하게 웃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처럼 좋아하는 언니에게 나도 창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