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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May 09. 2022

소확행을 찾아가는 삶

12 - 8 신나는 글쓰기


소확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하는 말이다. 이 수필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검색기를 가동해서 찾아보니 이렇게 등장한 줄임말이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小) 하지만 확(確)고 한 행(幸) 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 체계 인지도 모르겠다.

             <랑겔한스 섬의 오후> 중에서 소확행



하루키의 열혈 독자로서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단어가 하루키가 만든 단어라서 왠지 더 반가웠다. 하루키의 소확행에도 공감한다. 그런데 그 팬티를 누가 잘 개서 돌돌 말아놓은 건지 하루키에게 묻고 싶다. 본인이 했겠지? 아닌가! 궁금해봤자 알 수 없다. 물론 직접 개서 이쁘게 정리해도 기분 좋고 엄마든 아내든 해주었다고 해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편안하고 행복하다면 다른 누군가 그 행복에 기여하는 노동이 있었을 거란 말에 동의한다.


나의 소확행은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500가지쯤 쓸 수 있을 것도 같고 10개 이하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행복해지는 순간은 500개 이상 될 것 같지만 그들이 '아주아주 확고한' 행복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이 단어에는 '작다'라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확고'해야 하며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몇십억 짜리 집을 사서 행복한 건 제외하고, 승진해서 좋기도 하지만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질 걱정이 따라붙는 류의 일도 제외한다. 아이가 태어나 행복하기도 한데 무거운 책임감이 주어지는 종류의 일도 제외하면 무엇이 있을까?


먼저 번뜩 생각나는 것은 책장의 마지막 마침표를 보고 책을 덮을 때다. 요즘 나의 독서는 한없이 게으르며 대중없다. 계획도 없고 순서도 없이 밀리에 넣어둔 책들을 훑고 결국은 소설을 읽어가다가 독서 모임이 다가올 때 부랴부랴 벼락치기 독서를 한다.


얼마 전 김초엽 소설을 두 권 째 읽었고 지난주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에세이 <어른의 재미>를 읽었다. 그러다 하루키와 철탐이 미뤄지며 김영하의 <작별 인사>를 재밌게 읽고 있다. 이렇게 두서없고 즉흥적인 독서지만 마지막 방점을 찍는 건 대단히 어렵다. 늘 뒷전으로 미루고 운동과 병행하거나 잠자기 직전의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지막 마침표까지 읽고 일과삶님이 리드하고 계신 매일 독서방에 한줄평과 한문장을 남긴다. 인증한 후 그것을 다시 노션에 정리하고 나면 확실히 행복하고 뿌듯하다. 물론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행복의 크기가 커진다. 생각할 거리도 문장의 즐거움도 없는 책을 읽는 시간은 즐겁지만은 않다. 그런데도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땐 역시 좋다. 끝나서 좋은 건가?


그리고 또 확실한 행복은 여행이다. 모든 여행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 해도 나의 자리를 떠나 좋은 풍경 속에 스스로를 던져놓을 때 소확행을 느낀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며 등대가 보이는 조그만 항구를 내려다볼 때 어느새 확실한 행복이 곁에 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건강도, 미래도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때라서 그런지 더욱 여행이 절실하게 가고 싶다. 오늘은 어떤 문우님이 홀로 당일치기 제주여행을 가신 포스팅을 읽으면서 예약하고 싶은 유혹을 참기 어려웠다. 조만간 저지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어떤 경계에 서 있는 일이 글쓰기다. 글쓰기를 일 년 넘게 하면서 주어진 과제나 미션을 거의 빠짐없이 했고 주말마다 보드게임에 참석했는데 점점 글이 밀리고 있다. 이게 나의 한계가 아닐까 싶어 좌절하기도 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 글을 토해내듯이 쓰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엔 나의 생각이 잘 풀리고 마음에 드는 문장으로 마무리될 때가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있는 일이지만 정말 있다. 그렇게 글을 마지막 교정까지 마치고 첫 번째 나의 소확행의 마지막 마침표를 바로 내가 찍고 브런치나 블로그에 올릴 때 변화가 있다. 심장 근처 어딘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면서 쓰윽 밀려오는 밀물처럼 좋은 감정이 들어서는 것이다.


마지막 행복은 다음날 별다른 반응을 부르지 못해서 그 밀물이 쭈욱 서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갯벌로 가득 차는 일이 다반사라는 함정이 있다. 그렇다 해도 바로 전날 내 속에 잠깐 찰나처럼 스친 감정은 분명 '작고' '확실한' '행복'이었다고 확신한다.



 차 안에서 아들이 혼잣말처럼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가 있겠죠? 그 이유를 결국 알 수 있을까요?"

바로 대답하지 못했고 잠시 뜸을 들인 후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겠지!'


크고 불확실한 불행이 만만치 않게 드나드는 삶에서 글쓰기로 자꾸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존재의 이유를 갯벌의 조개 캐듯이 샅샅이 뒤져가며 글을 쓴다. 그 질퍽한 뻘 안에서 쑥 물방울을 뿜어내는 작고 확실한 행복을 찾으며 인생의 끝 어딘가로 가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아이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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