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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May 20. 2022

청구기호가 틀린 도서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찾다


문제의 책 제목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었다. 


이걸 빌리자고 검색해 보니 제일 가까운 구립 도서관은 대출 상태였고 작은 도서관 몇 군데에 책이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얼마 전 리모델링한 깨끗하고 쾌적한 큰 구립 도서관이 있기에 작은 도서관을 잘 이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을 찾다 보면 큰 도서관은 이미 대출 상태가 아니면 오래되고 낡은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작은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하거나 직접 가서 빌려오면서 집 주변의 도서관들에 익숙해져 가던 차였다.


상호대차를 하고 싶었는데 빌려온 책중에서 두 권이 대출기한을 넘겨서 대출정지가 되었다. 반납했지만 해제되려면 2, 3일 정도 더 있어야 했다. 좋은 책들이라 책을 다시 읽으며 정리해서 노션에 남기려고 반납이 늦어졌는데 역시 미련한 짓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반납하고 다시 빌려야 했다. 꼭 이럴 때 급히 책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도서관 앱으로는 내 계정밖에는 상호대차가 안돼서 아이 계정으로 빌리려고 책이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 권씩 필요한 아이 논술 책은 도서관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자주 샀는데 막내 책은 늘 사는 게 아깝다. 물론 마음에 드는 책은 자주 읽어서 아깝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번 읽고 만다. 웬만하면 멀리 서라도 빌리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점점 편독(偏讀)을 한다. 달라구트 백화점은 열 번째 읽고 있는 듯하다. 1권 읽고 2권을 또 지금 읽고 있다. 3권은 어제 나오려나?


길 찾기로 보니 집에서 27분 걸어가면 되는 작은 도서관에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있어서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며칠 걷기 운동을 못해서 숙제처럼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곳 말고 50분쯤 거리의 숲 도서관이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인데 그곳에도 책이 있었다. 깨끗하고 숲 옆에 있어서 분위기도 좋은 꽤 큰 도서관이다. 책을 빌리러 갔다가 초록의 나무들이 그득 보이는 쪽의 책상에 앉아서 반드시 책을 읽고 오게 되는 그런 장소다. 작은 도서관은 몇 군데 다녀봤는데 책 정리도 잘 안된 곳이 있고 좁아서 앉아서 읽고 싶은 곳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숲 도서관은 왕복 걷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려서 저녁 준비할 시간도 모자랐고 체력도 문제였다. 검색하니 차로 10분쯤 운전해서 가면 되는데 걸으면 58분이 걸렸다. 책 읽기는 포기하고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결국 산의 데크길로 운동을 가고 숲 도서관에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현명한 결과였다는 건 한참 후에 깨달았다.




가는 도중에 주민센터 위에 있는 도서관에서 지난주 빌린 책도 반납하고, 그 책이 있는 도서관을 '도보 길 찾기'로 확인하며 열심히 걸어갔다. 햇빛은 모자로, 꾀죄죄한 나의 모습은 마스크로 가렸다. 그늘에 간간이 불어오는 조금은 서늘한 바람은, 잔뜩 보풀이 인 후드 집업으로 막으며 운동이 되도록 성큼성큼 걸었다. 초등학교 근처 건물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거의 도착했는데 그 위치에 없어서 순간 당황했다. 두리번거리다가 확대해서 스마트폰의 화면을 자세히 보았다. 목적지인 도서관은 길 건너편 장미 축제가 한창인 둑길 위에 컨테이너로 된 핑크색 단층 건물이었다.


진짜 이름에 걸맞게 장미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침 계절이 도서관 이름을 설명해주려는 듯 주변에 갖가지 색깔의 장미가 만발해 있었고, 축제기간인 장미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5월의 장미를 마음껏 봐주지 않으니 나를 불러준 것만 같았다. 이곳은 2017년에 개관한 구립 도서관이었고 면적은 43제곱미터, 소장 도서는 2000권인 말 그대로 '작은' 도서관이었다.


들어가려는데 한 커플이 생각보다 조용하고 좋았다는 얘기를 나누며 나왔다. 성큼 들어가니 산책 중인 사람들로 시끄러운 바깥과 다르게 소음이 거의 완벽하게 차단되어 조용했고 깔끔하게 정돈된 곳이었다. 아쉬운 점은 모든 창문을 닫고 아직 에어컨을 켜지 않아서 조금은 답답했다. 몇 개 되지 않는 책상에 다정한 연인이 나란히 앉아 서로에게 기댄 채 책을 보고 있었고, 그 옆에 예쁜 단발머리 직장인이 독서 중이었다. 귀퉁이 어린이 책 공간에서는 한 아주머니께서 아이들 책을 한 권씩 뽑아서 계속 읽고 계셨다.


다음 주 독서토론 책과 이미 검색해 놓은 아이 수학도서를 몇 권 찾고. 마지막으로 주문을 틀린다는 책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없었다. 그 책만 청구기호 자리에 없었다. 분명히 아동도서가 아니었는데 성인도서 부분에 없어서 아동 부분까지 샅샅이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땀 흘려 걷다가 들어온 데다가 무척 후덥지근한 곳에서 책을 찾느라 또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스러웠다. 결국 사서 분께 부탁했고 그분도 한참을 찾으시더니 없다고 하셨다. 지금 어떤 분이 보고 계실 수도 있고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근처 그 책이 있는 곳을 찾아주셨는데 제일 가까운 곳을 여쭤보니 이 둑길로 쭉 가면 되지만 멀다고 하셨다. 그 '쭉'이라는 단어에 2.3킬로를 걷기로 하고 찾아 나섰다.


검색해 보니 또 37분을 가야 하는 곳이었다. 집과 반대 방향이었다. 잠깐 서서 장미 향기가 흩날리는 곳에서 망설이다가 그래도 오늘 꼭 빌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면 책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경험을 했다. 대여한 책 네 권이 든 에코백을 어깨에 메고 걸어갔다. 쭉이라고 하셨지만 중간에 끊긴 길이 있어서 이리저리 한참을 걷다가 도서관 마감시간이 걱정되었다. 전화해 보니 5시 50분까지라고 하셨다. 큰 아이 간식을 챙겨주고 집에서 4시 10분에 나왔는데 그때가 5시 20분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부지런히 걸어가기로 했다.


드디어 또 작은 주황색 컨테이너 도서관을 찾았다. 한분이 마감 시간을 아시는지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나오셨다. 퇴근 시간이 다가온 사서분께 죄송한 마음으로 열심히 아까 도서관과 같은 청구기호의 책을 찾았다. 


이런! 또 없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온 세계가 방해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먼 길을 그 책을 찾아서 왔다고 하니 사서 분도 함께 계속 찾으시며 정말 이상하다고 하셨다. 누군가 책을 읽고 다른 곳에 꽂아 둘 수도 있다는 말씀에 청구기호와 다른 곳을 쭈욱 훑어봤다. 일본 작가 책이어서 일본 도서 부분을 두리번거리다가 눈길이 멈췄다.  하얀색 표지에 [주문을 틀리는]이라는 까만색 책 제목의 단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많은 책들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책은 청구기호보다 훨씬 뒤쪽 부분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별처럼 반짝반짝.


"찾았어요!"


사서 분께 소리쳤다. 책을 꺼내어 보니 인터넷상 청구기호에는 833이었는데 책에는 838로 적혀있었다. 처음엔 노안이라서 앱의 숫자를 잘못 확인한 거라고 생각했다. 3은 8로도 보이고 8은 3으로도 충분히 보였다. 하지만 사서 분이 컴퓨터로 확인을 하시고는 분명히 3으로 적혔다고 이상하다며 수정해야겠다고 책 사진을 찍어두셨다. 먼 길 왔는데 결국 책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셨고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 와서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얼마든지 잘못 기입할 수 있고 숫자도 착오가 있을 수 있다. 단지 그 착오가 내 앞에 온 것일 뿐이다.


쉬운 길이 있었는데 어렵게 어렵게 돌아간 그 길에 책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책인가 싶어서 집에 돌아오면서 뒤적여보니 표지도 귀엽고 내용도 재미있어 보였다. 아이도 보자마자 재밌을 것 같다고 하며 읽기 시작했다. 슬쩍 읽고 있는 아이에게 물어보니 치매에 걸리신 노인분들이 운영하시는 요리점이라고 한다. 실제 있는 곳이고 손님들은 틀린 주문의 음식을 기쁘게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다 읽으면 나도 꼭 읽고 다시 글로 남겨야겠다. 나를 고생시킨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청구기호가 틀린 도서관]에서 마침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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