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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May 16. 2023

밖에서 들여다봐야 보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누구나 볼 수 있을깨


p.80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p.102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p.123
우리의 밥상에 우리 선조들 대부터 묶어 흘려보낸 시간들이 올라앉았다. 그것을 잡아 칼날로 눌렀다면 피와 눈물, 그리고 힘없는 웃음소리와 밭은기침 소리가 그 마디마디에서 흘러 떨어졌을 것이다.
p.127
 아버지의 실제 모습보다도 작게 축소된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까지 회색이다. 나는 나 자신의 독립을 꿈꾸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 아니다. 집을 나온다고 내가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다. 밖에서 나는 우리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끔찍했다




몇 페이지만 읽고 자려다가 끝까지 읽고 말았. 20여 년 전 읽었을 때와 느낌이 참 달랐다. 그땐 잔뜩  났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슬프고 한없이 아다. 난장이의 아이들인 삼 남매의 시선으로 작고 작은 아버지와 자신들의 모습과 사회의 구석진 민낯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영희의 이야기엔 눈물이 났다.

'밖에서 나는 우리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끔찍했다.'라고 말하는 영희의 말처럼 안에서 함께 살면 모른다. 잘 보이지 않는다. 나도 그 안에 포함되어 그저 일상적인 삶이 된다. 영희는 집을 나와 집보다 끔찍한 일을 겪으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가지만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결국  그들을 구해내지 못한 영희는 이후 어떻게 살아냈을까.


자비심이라고는 없이 작가는 끝까지 밀어붙인다. 식사를 끝낸 집을 밀어붙여 철거하는 철거원 같다. 산업화의 시대에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작고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래도 되겠냐고 이대로 괜찮겠냐고 말한다. 그렇게 처절한 것이 현실이며 피해서 도망갈 달나라는 없다고 소리치는 소설을 보며 지금도 어디선가 처절하게 소비되는 사람들의 비극이 청각적으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엉클어지고 흐트러졌다. 작가의 은유적이면서도 적나라한 묘사와 이야기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장을 덮지 못하게 했다. 문장을 구글킵에 정신없이 타이핑하며 오래오래 잠 못 들게 했다.


누군가는 이런 소설 속 현실이 도저히 이해도 공감도 가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했다. 지금은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소설을 자신의 기반으로 이해하면 불편해진다. 얼마 전 SF소설로 수업을 할 때도 그런 분들이 계셨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텍스트 자체를 읽지 못하겠다며 완독을 포기하셨다. 독서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활동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려면 불편함을 미학적으로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세희 작가는 작년에 별세하셨다. 1942년 생이셨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8년 발표한 소설이다. 작년 신문기사에서는 이 책이 320쇄를 찍었으며 누적 발행부수가 143만 부라고 했다. 누군가는 어디에선가 이 책을 읽고 있다. 구글킵에 저장하며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떠나 글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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