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북클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a Mar 08. 2024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

엄마가 보내는 작고 작은 메시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토너>중에서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4차선 횡단보도를 건너면 큰 교회 뒤편에 바로 자그마한 산의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그 산의 정상은 160.1m이고 둘레길은 4.2km 코스로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정상까지 오르는 지름길로 가면 20분이 채 걸리지 않아서 강도는 높지만 짧게 느껴진다. 둘레길은 충분히 운동도 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힘들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반복되고 허리에 무리가 가서 남편을 따라가거나 동네 친구들과 몇 번 가보고 곧 포기했다. 둘째를 낳은 후 허리가 자주 아프다. 누워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는데 디스크는 아직 아니지만 진행 중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다. 조금만 무리를 하면 물리치료에 도수치료까지 해야 일상생활이 가능해서 늘 조심하는 편이다.


새로운 소식이 들렸다. 2021년 12월에 산 정상까지 데크길이 완공됐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인 때에 한동안 외출을 못했는데 그 사이 공사가 끝났다. 동행길이라는 이름의 데크길 공사를 한다는 공지를 보았을 땐 왜 그렇게들 산을 못살게 굴까 사람들의 이기심에 거부감이 생겼다. 산을 그대로 유지하고 보존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사람이 오르기 좋은 산을 만드는 게 못마땅했다. 그곳에 사는 많은 나무들과 동물들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답답하던 마음에 한번 올라본 데크길은 신세계였다. 완만하게 정상까지 지그재그로 연결된 데크길은 적당한 경사도 있어서 평지보다 운동효과가 있었고 정상까지 오르는데 25분에서 30분 정도로 하산까지 왕복하면 아주 적당한 운동시간이 완성됐다.


놀라운 점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오르내리는 분들을 뵐 때다. 그분들이 산의 사계절을 느끼시고 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시는 모습을 보면 동행길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도 알 수 있었다. 건강하게 걷고 뛰는 이들만이 아니라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분들까지 함께 오르는 길이라는 뜻에서 모두 동행한다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걸음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보호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데크길을 오르시곤 한다. 자연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들의 곁을 내어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동식물에게 미안하지만 고맙다고 다시 바꿔서 말하고 싶다.


그분들 뿐 아니라 내게도 기적 같은 순간을 많이 준 길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폭발할 것 같은 절망감까지 드는 일이 생겼을 때 책을 한 권 가방에 거나 손에 들고 집 나선다. 데크길을 걷다 보면 정말 스토네에 나오는 구절처럼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내려오기도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갈 거야.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괜찮아. 지나갈 거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듯이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멈춰 서서 매일 같은 곳의 사진을 찍었다. 그곳에는 늘 같은 하늘과 같은 풍경이 매일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고 핸드폰에 담겼다. 어느 날은 맑게 개인 파란 하늘과 부서지는 햇빛에 건물들의 창이 반짝였으며 어느 날엔 곧 무엇이라도 쏟아질 듯 잔뜩 흐린 하늘에 사람들이 갇혀있는 작은 건물들이 스산해 보였다. 나무는 점점 가지를 뻗어가다가 툭 소리 내며 부러지곤 했고, 어디선가 뻐꾸기는 맑게 뻐꾹뻐꾹 울어댔다. 아니 웃어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 고2가 된 큰아이 학교 설명회라고 해서 서둘러 저녁으로 카레를 만들어놓고 학교에 갔다. 300여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학모들과 앉아서 설명회를 듣고 각반으로 가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2학년 1반 교실을 찾으며 아이에게 책상이 어느 쪽인지 문자로 물었다. 바로 알려줘서 아이 책상을 찾아 앉았다. 앞에서 세 번째 하얀 책상이었다. 선생님 안내사항을 들으며 책상을 슬쩍 쓰다듬었다. 오랫동안 이곳에 앉아서 아이가 쏟을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찡해졌다. 한국의 입시지옥을 견디고 치러내는 아이들도 이 시간이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려는지 궁금했다. 일정이 다 끝날쯤 아이 책상 한 구석에 작게 '화이팅'이라고 적었다. 아이는 정말 싫어하겠지만 소심하게 쓴 작은 메시지가 엄마의 마음 한 조각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다시 이 글을 쓰고 나면 데크길로 갈 것이다. 어제의 무거운 마음과 걱정, 근심을 데크길 위에다 점점이 흩어놓고 다 지나갈 거라고 지금 충분하다고 중얼거리고 와야겠다. 맑은 산새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 얼었던 물이 녹아 졸졸 흐르는 소리까지 충분히 들으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리셋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 한 사람을 구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