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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Mar 08. 2017

피어나는 꽃

테디베어 해바라기


꽃봉오리라는 말에는 망울만 맺히고 아직 피지 아니한 꽃이란 사전적 의미와 희망에 가득 차고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 세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있다. 굳이 젊은 세대에게만 붙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할짝 개화할 꽃봉오리 하나씩을 마음에 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틔우고 자신을 활짝 피어날 순간을 위해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안에 꽃봉오리는 늘 움츠리고 있었다. 다 피어나 바닥에 떨어져 버릴까 걱정스럽고, 그로 인한 상실과 아픔으로 버티지 못할까 봐 염려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피우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걱정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절.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던 내게 어느 날 변화가 찾아왔다. 




폐쇄병동에는 몇 가지의 등급이 있었다. 등급은 해, 달, 별로 이루어져 있었다. 해등급이 가장 높고 별 등급이 가장 낮았다. 낮은 등급은 외출이 제한되어 있었고, 높은 등급은 외출이 자유로웠다. 중간 등급인 달 등급은 일주일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 단체 외출이 가능했다. 


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을 했던 탓에 언제고 퇴원을 결정하고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꽤나 오랜 기간 병원에 스스로 머물러 있었다. 들어올 때만 해도 병원은 낯설고 무서웠지만, 막상 생활하다 보니 이곳도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바깥세상과는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깥과 차단되어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 바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점점 병원이 익숙해져 갔다.


그럼에도 가끔 외출을 하고 싶었다. 폐쇄병동에서의 생활은 마치 껍질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안정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이따금 창밖의 풍경이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바람이 느껴지고,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칠 그런 감각이 내심 그리웠다. 


바깥에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이 계속된다면 퇴원을 해도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외출이 보다 안전한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크게 바뀌지 않던 상담들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상담치료에 참여도가 낮았다. 상담치료의 참여도가 낮아 여전히 내가 속한 등급은 별 등급으로 외출이 제한되어 있었다. 결국 외출이 하고 싶다면 등급을 올려야만 했다.


이후 등급을 올리겠단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많은 상담치료에 참여했다. 그룹 상담을 통해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그림이나 음악을 동반한 상담치료도 병행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나 달 등급이 되었다. 


외출은 수요일과 금요일 두 번 3시부터 4시까지 한 시간이 허용되었다. 외출은 병동 뒤로 마련된 병원 내 작은 산책로에 한하여 허용되었다. 몇 걸음만 걸으면 끝나버릴 작은 공간이지만 큰 만족감을 주었다. 주로 외출 시간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짧은 시간 앉아 느끼는 겨울바람은 청량했고, 공기는 신선했다. 


외출을 위해서라지만 상담을 하면서 많은 것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간의 회의감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상담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할수록 무엇인가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날아든 뜻밖의 생각하나 가 이후 삶의 태도를 많이 바꾸게 만들었다.


몇 번째의 외출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날은 무척이나 하늘이 파랗고 높았다. 차가웠지만 불어오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그런 날이었다. 평소처럼 벤치에 앉아 멍하니 산책로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때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파랗게 비워진 하늘에 날아든 비닐봉지 하나가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불어오는 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나부끼는 비닐봉지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람이 불면 늘 버티려 애쓰던 삶을 살아왔다. 가느다란 두 다리로 지면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며 바람을 이겨내려 늘 애썼다. 내 뿌리가 약해 늘 바람에 흔들리며 괴로워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탓해왔다. 그리고 늘 지면에 깊게 뿌리내리고 안정을 찾길 바랬다. 그러나 날아든 비닐봉지 하나는 내게 다른 삶을 이야기하는 듯싶었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드는 비닐봉지는 세찬 바람에 제 몸 가누지 않고 나부끼면서도, 지면에 붙어 세차게 흔들리던 나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자유로운 활강을 하며 흐르는 대로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때론 그저 날리는 바람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보냈어도 되었을 것을.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때로는 힘 빼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았을 것을.


아마도 그날이었던 모양이다. 내 안에 봉우리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던 것은.




이후 이런 바뀐 삶의 태도는 내게 많은 변화들이 가져왔다. 일정 부분 내려놓고 흐름에 몸을 맡기자, 안간힘을 쓰고 살 때보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울한 마음이 들 때면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다. 그것들 그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울한 마음에 집중하고, 완성을 할 때 그것을 털어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그림으로 그려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 나의 그림을 보고 많은 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뜻밖에 위로를 건네고 용기를 전해주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게 긍정적인 영향들을 끼쳤다. 혼자에서 여럿이 되고  아마도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살아가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마음가짐만으로 이리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행운도 많이 따랐다고 볼 수 있겠다. 어쨌든 그들은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내 안에 꽃봉오리가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길만 걸으라는 인사말이 있다. 누군가 걷는 길에 아름다움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예쁜 인사말이다.

아름답게 피다 지더라도 내게 소중한 이들을 위해 꽃길이 되는 삶이라면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을 담아 꽃길만 걸으라는 인사를 전하는 것을 넘어, 꽃길에 흩날리는 꽃잎이 되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모든 것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꽃이 피어나면 지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이젠 꽃봉오리에 머물지 않고, 활짝 개화해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곁에 머물다 소중한 이들의 꽃길이 될 낙화가 되고 싶다. 이젠 많은 이들의 앞길에 많은 꽃잎을 흩날릴 수 있도록 더욱 크게 피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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