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Mar 09. 2017

기다림

억겁 같은 인연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사방 40리의 거대한 돌을 100년에 한 번 얇은 천으로 닦아 마침내 그 돌이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고 했다. 또는 사방 40리의 거대한 돌 위로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닿아 그 돌이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혹은 사방 40리에 거대한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 넣고, 100년에 한 번 한톨씩 꺼내어 모든 겨자씨를 다 꺼낼 때까지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그 무한한 시간을 500번 반복해야 옷깃 한 번을 스치는 인연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숱한 환생, 유구한 세월을 보내며 태어나고 죽음을 몇 번이나 반복 해고서야 우리는 겨우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일까.


매일 같이 콩시루와 같은 버스 안에 몸을 싣고 나서는 출근길에서 스치는 이름 모를 사람조차 겨우 이렇게 만난 인연이란 말이다. 하물며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들은 도대체 몇 번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인연이란 말인가.


언젠가 내게 찾아올 당신은 얼만큼의 삶을 반복한 끝에 이어진 만남일 것인가.


당신의 부재로 인해 비롯되고 있는 기나긴 고독감.

그토록 기다림이 긴 것은 우리의 인연이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하게 되는 억겁 같은 인연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겨우 그런 희망을 품은 채, 오늘도 천년의 고도를 쓸쓸히 걷는 기분으로 하루를 더 살아가며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어나는 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